박선배! 하루 하루 봄의 문턱으로 접어들면서 이렇게 사무치도록 그리운 박선배! 지금 거기서도 낚시를 하고 계십니까? 극락정토(極樂淨土), 봄바람 삽상한 그곳 무룽도원(武陵桃源)의 어느 호반에서 내가 드린 세칸 낚싯대를 호젓하게 펼쳐놓고 지금도 여전히 줄담배를 피워대면서 이런 말이나 중얼거리고 계시지 않습니까?
"머 많이잡아야 낚신가 한번 조행(釣行)에 찌놀림 한번만 봐도 그기 큰 행운인기라. 낚시라 카는거는 고기만 잡는 기 아이라 산천초목도 같이 낚는 기라카이."
몇해전 한여름, 둘이서 용인의 송전지(松田池)로 밤낚시를 갔을 때 그날 따라 손바람을 내며 연신 굵직 굵직한 붕어를 채올리는 나 한테 박선배는 까딱도 않고 찌만 바라보면서 시큰둥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지요. 그리고 막연히 깜깜한 먼산을 바라보던 박선배의 모습이지금도 눈앞에 선합니다. 그러나 그뿐, 언제 토라졌느냐는듯 슬그머니 내 살림방을 들여다보고는, "아이구, 그놈들 크다! 어람청출(於籃靑出)이라 카더이 낚시 가르친 보람이 있네." 하며 껄껄 웃던 천진난만하던 박선배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박선배! 지난 15년동안 나는 당신 한테서 낚시의 정도(正道)를, 나아가 세상사(世上事)의 진리를 배웠습니다. 박선배와 내가 안양의 물왕리(勿旺里) 저수지에서 우연히 만났던 때가 1976년 초여름이었지요 아마? 지금은 낚시터로는 쓰잘데 없는 곳이 되어버렸지만 그때만 해도 서울 근교에서는 비길데 없이 청정(清淨) 낚시터였던 그곳을 나는 숨겨놓은 애인을 만나러 가듯이 자주 찾았고 그날도 며칠 낯밤을 꼬박 원고지와 씨름을 하다가 머리도 식힐 겸 신새벽에 훌쩍 찾아간 곳이 또 거기였지요. 하루 종일 제법 짭잘한 손맛을 보고 주위가 어두컴컴해질 무렵에서야 낚싯대를 걷고 있는데 저쪽에서 키가 늘씬한 낚시꾼 하나가 물가에 널린 쓰레기를 하나 하나 주으며 내 쪽으로 오고 있더군요. 그제서야 내 발치에도 하루 종일 내가 버린 담배꽁초가 수북한 걸 발견하고 주섬주섬 줍고있는데 그때였지요. 내 곁에서 왁작지껄 떠들며 대를 걷고있던 대학생들로 보이는 너덧 낚시패들 중의 하나가 불쭉 이렇게 내뱉더군요. "쳇, 왕년에 누구 자연보호 안해본 놈 있나?"
그리고 나머지는 무슨 기발한 재담(才談)이나 들은듯이 키덕거리며 웃고 있더군요. 모두가 쓰레기를 줍고있는 그 양반을 비아냥거리는게 분명했지요.
각설(却說) 하고, 결말부터 얘기하면 그날 쓰레기를 줍던 그 양반이 바로 박선배였고, 그런 경우 앞뒤 살필 줄 모르는 기차화통 같은 내 성깔에 겁도 없이 그 패거리 중의 한녀석을 번개 같이 멱살을 거미잡고 따귀를 갈겨버렸고, 내편을 들어주리라 생각했던 박선배가 뜻밖에도 그 사이에 끼어들어 일대오 쯤 되던 대격투(?)를 가까스로 말렸고, 암튼 그런 아수라장 끝에 박선배와 나는 그곳 나루터 주막으로 들어가서 소주병을 까며 수인사를 나누었지요.
"아따, 형씨 그 성미 한번 대단하네요. 요새 젊은 것들 잘못 건드렸다가는 큰일 납니데이."
큰일이고 뭐고 외양으로 봐서는 준수한 서울양반인 줄 알았는데 박선배는 듣기좋은 경상도, 그것도 첫 억양이 우리 부산사람이 분명한 말씨를 썼고 잠시 후에 나는 어느 고등학교 출신인지를 조심스럽게 물었지요.
'나요? 아실른지 모르겠지만 나로 말하면 P고등학교를 나왔십니다. 형씨도 부산이라믄서 어데 나왔십니꺼?"
P고등학교라는 단어에 무슨 장원급제라도 한듯이 힘을 주며 말했는데 나는 대답도 하기 전에 덥썩 당신의 손을 잡았고 나 보다 십여세는 많을 줄 알았던 당신은 나의 고교 3년선배였습니다. 그리고 그날의 허름한 행색으로 미루어 영락없이 할일 없는 실업자로만 알았던 박선배가 서울 Y동의 이름난 산부인과 개업의(開業醫)라는 걸 알고 나는 당신의 소탈함에 놀랐고 박선배도 내가 어느 태권도장의 사범 쯤으로 알았다며 서로 박장대소를 했지요. 그날 부터 우리는 선후배로, 그리고 때로는 친형제 이상으로 흉허물 없는 사이가 되었지요.
남들은 골프다 뭐다 꽤 고급스런 분위기로 주말을 즐기는데 우리 둘은 오직 구질구질한 낚시 하나로만 15년이 넘게 선후배의 정분(情分)올 이어 왔습니다.
나도 그렇지만 박선배도 정말 이 세상사람 누구도 못말리는 낚시꾼이었지요.

몇해전 여름에 서로 동부인해서 파로호(破擄湖)로 피서 낚시를 갔을 때 형수씨가 그랬지요. 이 양반, 의과대학만 안나왔으면 틀림없이 지금 낚시회 총무를 하고 있을 거라고. 그리고 그때 나는 맞받아서 이런 말을 했지요. "맞십니다. 하지만은 그냥 낚시회가 앙이라 신선(神仙) 낚시회 총무실겁니다. 아매."
그렇습니다. 박선배는 요즘 세상에서 좀체 보기 드문 진짜 낚시꾼이었습니다.
낚시대를 거둘 때 마다 자주 이런 말씀을 하셨지요? "수천, 수만년전 부터 해오는 낚신데 우리만 즐겨서는 안되는기라. 우리 후손들도 우리 매로 낚시를 즐기게 할라카믄 지금 있는 그대로의 낚시터는 물려주어야 하는기라." 세상사가 삐딱허면 궤변(詭辯)이 정론(正論)으로 둔갑을 하고 진리가 곡설(曲說)로 불린다더니 지극히 당연한 박선배의 그때 목소리가 낙동강 페놀이 어떻고 공장페수 로 한강수가 시궁창이 된지가 오래전이었다는 얘기를 떠올릴 때 마다 이렇게 생생할 수가 없습니다.
낚시터에만 앉으면 고기야 물리건 말건 항상 외바늘 채비로 "낚시란 고기만 잡는 기 아이라 산천초목도 "같이 낚는다"고 노래 처럼 말했고 카본대가 유행을 하면서 너도 나도 장만을 할 때 당신은 콧방귀를 뀌면서 "낚싯대가 문젠가?
주위만 조용하믄 손가락 끝에 줄을 매놔도 고기는 물리게 마련인데." 그러다가저 세상으로 가시기 직전 작년 가을녘에서야 "그거 역사가 가볍다 카든데 나도 하나 마련해 보까 ·· " 지나가는 소리 처럼 그렇게 말하더니 지난 겨울 어이없게도 교통사고로 덜컥 유명을 달리 하시다니요.
입관(入棺)을 하는 자리에서 부인의 허락을 얻어 세칸 짜리 카본대에 외바늘과 고추찌 채비를 해서 당신 곁에 넣었습니다. 천국에 봄이 오면 주조 구멍지기에 아무 지장이 없도록 말입니다. 그곳 낚시터에는 이제 지저분한 쓰레기도 고성방가를 일삼는 몰지각한 낚시꾼도, 당신이 그렇게도 미워하시던 고자포식 뭔데이 파렴치한들도 보이지 않겠지요? 우리 거기서 다시 만나면 그때는 이승의 더럽고 지저분한 낚시터는 깡그리 잊어버리고 진짜, 진짜 낚시를 즐깁시다요.
그리운 박선배! 하루 하루 봄의 문턱으로 접어들면서 이토록 사무치게 그리운 박선배!
<11월 호에 계속>
박선배! 하루 하루 봄의 문턱으로 접어들면서 이렇게 사무치도록 그리운 박선배! 지금 거기서도 낚시를 하고 계십니까? 극락정토(極樂淨土), 봄바람 삽상한 그곳 무룽도원(武陵桃源)의 어느 호반에서 내가 드린 세칸 낚싯대를 호젓하게 펼쳐놓고 지금도 여전히 줄담배를 피워대면서 이런 말이나 중얼거리고 계시지 않습니까?
"머 많이잡아야 낚신가 한번 조행(釣行)에 찌놀림 한번만 봐도 그기 큰 행운인기라. 낚시라 카는거는 고기만 잡는 기 아이라 산천초목도 같이 낚는 기라카이."
몇해전 한여름, 둘이서 용인의 송전지(松田池)로 밤낚시를 갔을 때 그날 따라 손바람을 내며 연신 굵직 굵직한 붕어를 채올리는 나 한테 박선배는 까딱도 않고 찌만 바라보면서 시큰둥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지요. 그리고 막연히 깜깜한 먼산을 바라보던 박선배의 모습이지금도 눈앞에 선합니다. 그러나 그뿐, 언제 토라졌느냐는듯 슬그머니 내 살림방을 들여다보고는, "아이구, 그놈들 크다! 어람청출(於籃靑出)이라 카더이 낚시 가르친 보람이 있네." 하며 껄껄 웃던 천진난만하던 박선배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박선배! 지난 15년동안 나는 당신 한테서 낚시의 정도(正道)를, 나아가 세상사(世上事)의 진리를 배웠습니다. 박선배와 내가 안양의 물왕리(勿旺里) 저수지에서 우연히 만났던 때가 1976년 초여름이었지요 아마? 지금은 낚시터로는 쓰잘데 없는 곳이 되어버렸지만 그때만 해도 서울 근교에서는 비길데 없이 청정(清淨) 낚시터였던 그곳을 나는 숨겨놓은 애인을 만나러 가듯이 자주 찾았고 그날도 며칠 낯밤을 꼬박 원고지와 씨름을 하다가 머리도 식힐 겸 신새벽에 훌쩍 찾아간 곳이 또 거기였지요. 하루 종일 제법 짭잘한 손맛을 보고 주위가 어두컴컴해질 무렵에서야 낚싯대를 걷고 있는데 저쪽에서 키가 늘씬한 낚시꾼 하나가 물가에 널린 쓰레기를 하나 하나 주으며 내 쪽으로 오고 있더군요. 그제서야 내 발치에도 하루 종일 내가 버린 담배꽁초가 수북한 걸 발견하고 주섬주섬 줍고있는데 그때였지요. 내 곁에서 왁작지껄 떠들며 대를 걷고있던 대학생들로 보이는 너덧 낚시패들 중의 하나가 불쭉 이렇게 내뱉더군요. "쳇, 왕년에 누구 자연보호 안해본 놈 있나?"
그리고 나머지는 무슨 기발한 재담(才談)이나 들은듯이 키덕거리며 웃고 있더군요. 모두가 쓰레기를 줍고있는 그 양반을 비아냥거리는게 분명했지요.
각설(却說) 하고, 결말부터 얘기하면 그날 쓰레기를 줍던 그 양반이 바로 박선배였고, 그런 경우 앞뒤 살필 줄 모르는 기차화통 같은 내 성깔에 겁도 없이 그 패거리 중의 한녀석을 번개 같이 멱살을 거미잡고 따귀를 갈겨버렸고, 내편을 들어주리라 생각했던 박선배가 뜻밖에도 그 사이에 끼어들어 일대오 쯤 되던 대격투(?)를 가까스로 말렸고, 암튼 그런 아수라장 끝에 박선배와 나는 그곳 나루터 주막으로 들어가서 소주병을 까며 수인사를 나누었지요.
"아따, 형씨 그 성미 한번 대단하네요. 요새 젊은 것들 잘못 건드렸다가는 큰일 납니데이."
큰일이고 뭐고 외양으로 봐서는 준수한 서울양반인 줄 알았는데 박선배는 듣기좋은 경상도, 그것도 첫 억양이 우리 부산사람이 분명한 말씨를 썼고 잠시 후에 나는 어느 고등학교 출신인지를 조심스럽게 물었지요.
'나요? 아실른지 모르겠지만 나로 말하면 P고등학교를 나왔십니다. 형씨도 부산이라믄서 어데 나왔십니꺼?"
P고등학교라는 단어에 무슨 장원급제라도 한듯이 힘을 주며 말했는데 나는 대답도 하기 전에 덥썩 당신의 손을 잡았고 나 보다 십여세는 많을 줄 알았던 당신은 나의 고교 3년선배였습니다. 그리고 그날의 허름한 행색으로 미루어 영락없이 할일 없는 실업자로만 알았던 박선배가 서울 Y동의 이름난 산부인과 개업의(開業醫)라는 걸 알고 나는 당신의 소탈함에 놀랐고 박선배도 내가 어느 태권도장의 사범 쯤으로 알았다며 서로 박장대소를 했지요. 그날 부터 우리는 선후배로, 그리고 때로는 친형제 이상으로 흉허물 없는 사이가 되었지요.
남들은 골프다 뭐다 꽤 고급스런 분위기로 주말을 즐기는데 우리 둘은 오직 구질구질한 낚시 하나로만 15년이 넘게 선후배의 정분(情分)올 이어 왔습니다.
나도 그렇지만 박선배도 정말 이 세상사람 누구도 못말리는 낚시꾼이었지요.
몇해전 여름에 서로 동부인해서 파로호(破擄湖)로 피서 낚시를 갔을 때 형수씨가 그랬지요. 이 양반, 의과대학만 안나왔으면 틀림없이 지금 낚시회 총무를 하고 있을 거라고. 그리고 그때 나는 맞받아서 이런 말을 했지요. "맞십니다. 하지만은 그냥 낚시회가 앙이라 신선(神仙) 낚시회 총무실겁니다. 아매."
그렇습니다. 박선배는 요즘 세상에서 좀체 보기 드문 진짜 낚시꾼이었습니다.
낚시대를 거둘 때 마다 자주 이런 말씀을 하셨지요? "수천, 수만년전 부터 해오는 낚신데 우리만 즐겨서는 안되는기라. 우리 후손들도 우리 매로 낚시를 즐기게 할라카믄 지금 있는 그대로의 낚시터는 물려주어야 하는기라." 세상사가 삐딱허면 궤변(詭辯)이 정론(正論)으로 둔갑을 하고 진리가 곡설(曲說)로 불린다더니 지극히 당연한 박선배의 그때 목소리가 낙동강 페놀이 어떻고 공장페수 로 한강수가 시궁창이 된지가 오래전이었다는 얘기를 떠올릴 때 마다 이렇게 생생할 수가 없습니다.
낚시터에만 앉으면 고기야 물리건 말건 항상 외바늘 채비로 "낚시란 고기만 잡는 기 아이라 산천초목도 "같이 낚는다"고 노래 처럼 말했고 카본대가 유행을 하면서 너도 나도 장만을 할 때 당신은 콧방귀를 뀌면서 "낚싯대가 문젠가?
주위만 조용하믄 손가락 끝에 줄을 매놔도 고기는 물리게 마련인데." 그러다가저 세상으로 가시기 직전 작년 가을녘에서야 "그거 역사가 가볍다 카든데 나도 하나 마련해 보까 ·· " 지나가는 소리 처럼 그렇게 말하더니 지난 겨울 어이없게도 교통사고로 덜컥 유명을 달리 하시다니요.
입관(入棺)을 하는 자리에서 부인의 허락을 얻어 세칸 짜리 카본대에 외바늘과 고추찌 채비를 해서 당신 곁에 넣었습니다. 천국에 봄이 오면 주조 구멍지기에 아무 지장이 없도록 말입니다. 그곳 낚시터에는 이제 지저분한 쓰레기도 고성방가를 일삼는 몰지각한 낚시꾼도, 당신이 그렇게도 미워하시던 고자포식 뭔데이 파렴치한들도 보이지 않겠지요? 우리 거기서 다시 만나면 그때는 이승의 더럽고 지저분한 낚시터는 깡그리 잊어버리고 진짜, 진짜 낚시를 즐깁시다요.
그리운 박선배! 하루 하루 봄의 문턱으로 접어들면서 이토록 사무치게 그리운 박선배!
<11월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