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조만담[제8화] 학급일지(2)

2024-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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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년 7월 X일 특보 - 담임의 숨겨둔 여자

이제 계절은 무더위의 언덕을 기어오르고 우리들의 정규 공부도 거의 끝나 간다. 2학기부터는 아예 교과서를 떠난 게릴라 학습으로 여기저기 닥치는 대로 문제 거리를 수집해 와서 공부를 가르치고 배운다. 여름방학도 곧 다가오는데 이래저래 우리 반 7월은 청포도가 익어 가는 계절이 아니라 가슴속 오장육부가 오들오들 타들어 가는 계절이다.

이런 때 오장육부를 시원히 식혀주는 특보가 날아들었다.

광복동 '뉴욕제과점' 에서 담임 선생의 데이트 현장이 목격되었다는 것이다. 이 '뉴욕제과점'은 당시 청춘남녀의 고급데이트 장소로 그 제과점 아래층 3번 테이블에서 우리의 근엄하신 담임 선생이 사모님이 아닌 묘령의 아가씨와 랑데부를 했다는 것이다. 그날 5반의 7공자 중 한 놈이 드는 솜씨로 N여고생을 하나 낚아 구석진 제과점 자리에서 한창 '구라'를 까고 있는데 불쑥 담임 유 선생이 들어 오시더란다. 놀란 나머지 흘끔흘끔 입구쪽을 보면서 빠져나갈 궁리를 하고 있는데 이게 웬일인가 날씬한 양장차림의 아가씨가 따라 들어 오면서 선생님 자리에 앉아 온갖 아양(?)을 다 떨더라는 것이다. 처음에는 그냥 도망가려고 했는데 그들의 모습이 하도 신기해서 지켜보았다는 것이다. 담임은 눈치채지 못했지만, 사제가 한 장소에서 밀회를 한 셈이다.

담임의 비밀을 알게 된 우리들은 흥분하였다. 과연 사모님을 울린(?) 그녀는 누구였을까? 우리는 보았노라. 들었노라.

분개했노라. 야릇한 흥분 속에서도 우리는 아무 행동도 하지 못했다. 여러분, 그 이름이 궁금하지요? 그러나, 무덤까지 지고 가야할 비밀은 사제지간에도 있는 법입니다. (알고싶은 자는 나에게 개별적으로 질문하기 바란다. 물론 맨입에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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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년 7월 X일 땅콩, 니가 왱이다

우리 급우들은 공부만 잘한 게 아니라 운동도 잘했다. 워낙 공부가 판을 치는 세상이라 덜 알려졌지만 개별적으로 운동 시합 같은 데에 나가 입상을 하여 학교 이름을 드날리기도 했다. 물론 야구부 같은 인기 있는 전문(?) 운동선수들은 아니지만 학교 대항 고교 테니스 대회에 나가서 김규환 군은 경남고를 격파하여 우리의 기를 살려주었고. 김부현 군은 경상남도 고등부 검도 시합에 나가서 그 땅콩만한 키에 깡다구로 2등을 하였다.

그런데, 족보에도 없는 땅콩 박순백이는 어느 날 기차 통학생끼리 벌인 '달리는 열차 뛰어내리기' 깡다구 대회에서 당당 2등을 하였다. 그것도 딱 2명만 출전한 대회에서...

 

64년 7월 7일 클레오파트라와 함께 춤을

오늘부터 그룹 별 졸업 사진 촬영에 들어갔다. 이 졸업 사진은 번호 순서대로 4개 조로 편성되어 각 조별로 알아서 좋은데 가서 사진을 찍는다. 키가 큰 그룹인 1조(1번에서 18번)는 해운대까지 원정하여 클레오파트라의 나신상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하였다. 사진을 잘 찍은 것까지는 좋았으나, 찍고 나서 흥분한 이모(李某) 군이 갑자기 옷을 훌훌 벗더니 그 알몸 조각 앞에서 춤을 추는 것이었다.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높아서 망정이지 만약 한자라도 낮았더라면 그날 이군의 '조각 희롱' 역사가 바뀌었을 것이다.

모두 말렸으나 신이 난 그는 듣지 않고 '빤쭈'(팬티) 바람에 거리를 활보하다 결국 '산따루'(순경)에게 체포당하였다. 명문 부고생이라는 바람에 풀려나긴 했지만, 파출소까지 따라간 학우들은 기분이 배꼽 밑 같이 되어 홧김에 서방질한다고 막걸리를 수도 없이 퍼마셨다고 한다. 아, 키가 커서 조숙한 것도 죄가 되나?

 

64년 7월 26일~28일 여우방학

팔월의 본격 과외에 들어가기 전까지 삼일간 틈새 방학이 있었다. 우리는 이를 '야시' 방학이라 했다. 우리는 방학이고 아니고 간에 학교에 나와서 교실이나 도서관에 앉아서 공부를 하였다. 그때는 요새같이 독서실 문화가 발달되지 않았다. 나도 집에서 공부할 처지가 못되어 여우 새끼처럼 학교에 매일 나왔다.

하루는 에어컨도 없이 찌는 듯한 목조 교실에서 낑낑대면서 공부하고 있는데 그 모습이 안쓰러웠던지 마침 지나가던 도서관 사서(司書) 조혜정 처녀 선생이 바께쓰를 빌려주어 거기에 찬물을 가득 담아와 책상 옆에 맨발을 벗어 담그고 공부를 하였다. 그런데, 공부는 안 되고, 그 처녀 선생의 분냄새만 황홀했다.

 

64년 8월 X일 물새야 우지 마라

보통 8월이면 한창 방학기간인데 입시를 앞둔 우리 3학년 졸업반들에게는 방학이 있을 수 없었다. 오히려 더 일찍 나오라고 한다. 아침 7시 30분까지 등교하라는 엄명이다. 새로 나온 프로그램으로 사홀간 과외 수업을 4시간씩 연속 실시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명문대학이 좋다지만 정말 불알에 땀이나고 발바닥에 요령소리 날 지경이었다.

이렇게 열심히 쪼아들 대었지만 할 짓은 해야 직성이 풀리는 나이들이다. 아니나 다를까 11일, 강모, 김모 두 친구가 즉심에 회부되었다.

죄상은 송도유원지에서 담배 피우다 들켰다는 것이다.

12일, 공부도 좋지만 좀 쉬었다 하자는 여론에 따라 자율 공부를 집단 보이콧하고 우리는 단체로 해운대에 해수욕을 가기로 하였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헤쳐 모여' 하고 집결지 해운대에서 인원을 점검해 보니, 재적 인원 68명 중 3명만이 참가하였다.

나머지 놈들은 어디로 샜나. 해운대까지 길이 멀어 송도로, 당구장으로, 극장으로 각자 기호대로 흩어진 것이다. 그 웬수 같은 공부를 저 혼자만 하려고 (남 놀 때에) 귀가한 놈도 있다나. 의리 없는 놈들 같으니. 끝까지 남은 3명은 "물새야 울지 마라, 우리가 있다." 하고 기왕에 온 김에 실컷 놀다 가자고 이리저리 기웃대다가 보트를 빌려 탔다.

모험심이 강한 이병홍(수원시 의원)이가 제의하여 겁도 없이 보트를 빌려 타고 그 험한 해운대 동백섬을 한바퀴 돌던 중이었다. 동백섬 바위에 한 무리의 여학생을 발견하고 모두 일어서서 손을 흔드는 바람에 배가 뒤집어졌다. 어푸어푸 하며 살려달라 소리치자 이를 본 여학생들의 비명에 보트 주인이 달려와 가까스로 구해주었다. 물을 바가지로 먹은 이병홍이는 여학생들 앞에서 그래도 "배 값 벌었다"하고 웃는 것이 아닌가. 익사 소동 때문에 학생들에게 안전 조치 없이 배를 내준 주인은 보트 값도 받지 못한 것이다.

어쩌면 요놈들이 지능적으로 돈 안 내려고 꾸민 수작인지 누가 알랴.

오늘은 약간 슬픈 날이다. 그 동안 정들었던 급우 중 한 명인 이부영 군이 브라질로 이민을 떠났다. 이민이 뭐가 좋은지 모르겠으나 아무튼 이 지겨운 입시 지옥을 떠나 신세계로 떠나는 그가 부럽기 짝이 없었다. 학급 대표로 우리는 부산 제2부두에 나갔는데 해군 팡파레가 울리고 만국기가 펄럭이며 야단들이었다. 무슨 환송식 같은 것을 한 뒤, 사람들이 갱웨이를 걸어 들어갈 때 여기저기 울음보가 터졌다.

붕- 하고 뱃고동이 한번 길게 울더니 배는 뱀처럼 바다로 미끄러져 간다. 연락이나 자주 해라 하면서 '연락선' (?)을 떠나보내는 심정으로 나는 오륙도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64년 8월 16일 연락선은 떠난다

그 길로 30년이 넘도록 감감 무소식이니 지금 살았는지 죽었는지 연락이 없다. 당시 우리 나라는 국민소득 몇 천 불에 불과한 못 사는 나라로서 희망을 찾아 배편으로 수 십일 걸리는 남미 쪽에 농업 이민을 많이 갔다. 나의 초등학교와 부산중학 동기인 이삼일군도 브라질로 가족 이민을 갔는데 가서 얼마 안되어 농장에서 일하다 뱀에 물려 죽었다고 한다. 요새 같으면 그런 이민, '벤또' 싸들고 권해도 안 갔을텐데. 끊어진 연락선은 다시 오는데 한번 간 그놈은 다시 올 줄 모르네. 아, 불쌍한 친구여, 동포여!

 <12월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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