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조만담[제6화] 나바론의 용사들

2024-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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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바론의 절벽

지난 호에 언급했듯이 5반 아이들의 교칙 위반행위는 사실 별것도 아닌데 그때는 큰 죄나 되는 듯이 벌을 주고 벌을 받았다. 그래도 죄목다운 죄목은 '교정월담죄" 라고나 할까.

구봉산 중턱에 위치한 우리 학교는 배산밍해(背山望海)의 복룡 형세다. 뒤로는 산이라 별 것이 없는 대신 동남쪽으로 다양한 먹거리와 유흥가가 있어 항상 이쪽 담을 넘는것이 유혹적이었다. 이 코스는 의식있는 부고생이라면 재학기간 중 한번쯤 시도해 보지 않은 자가 없을 정도로 유명하였는데, 수업 중에 작당하여 무단이탈하는 방법으로 가장 많이 이용되던 공면한 비밀루트이다.

부중 쪽 운동장 좌편으로 개천이 흐르는데 이것이 천연적인 해지 구실을 하고 있어 학교측에서는 별도로 벽돌담을 치지 않았다. 그 개천 방둑이 바로 '나바론의 절벽'인데 수위실이 멀리 떨어져 있어 탈출 성공률이 매우 높았다. 둑방올 타고 내려가 개친을 건너 다시 반대편 둑방을 기어오르는 이 루트는 늘 오르내리는 스릴이 있었다.

이 루트를 이용해 대부분 수업시간에 영화를 보러가거나 볼일을 보러 다녔다. 이 나바론은 당시 인기를 끌던 그레고리펙이 주연한 '나바론의 요새'라는 영화를 보고 우리가 지은 이름이다. 이렇게 말하면 모두 불량학생들 같지만, 실제로는 나름대로의 계산과 꿍심이 있었기에 약간의 탈선을해도 이내 제자리로 돌아왔고, 그 탈선의 정도도 심하지 않았다.

어쨌든 재미없는 과목이나 실력 없는 선생들의 수업시간이면 어김없이 장난기가 발동하였고 밖에서는 불만한 영화가 상영되고 있었다. 그러면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들은 촌보의 주저도 없이 이 '나바론의 절벽'을 넘어 인근 극장에 가거나 당구장이나 시장동을 휘젓고 다녔다. 휴일과는 달리 평일에는 그 무서운 합동단속반이 없기 때문에 안심하고 볼일을 볼 수가 있었다. 나도 정영일(변호사)군과 함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라는 영화를 보았는데 그 웅장한 스케일하며, 클락게이블의 남성미와 비비안리의 아름다운모습,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 '내일의 태양은 내일 다시 뜨리라'하면서 불타는 타라 농장을 바라보며 결의를 다지는 스칼렛의 모습이 너무나 인상적이었음을 기억한다. 이 기억은 평생 남아 있으며, 지금도 밍화극장 시간 같은 때에 이영화를 보지만 그 때의 첫 감동을 잊을 수 없다. 



그런데, 나바론의 탈출도 고학년이 되면 그 이용실적이 저조해지기 마련이다. 절벽의 주(主) 이용권은 자연스럽게 저학년 쪽으로 넘어가고 대부분 입시공부에 몰두했는데, 그래도 줄기차게 그 절벽을 잊지 못해 기어오르는 물개 같은 무리들이 있었다. 정학까지 당한 바 있는 김O권이는 물론이고, '진로'라는 별명을 가진 7반의 명물 권재진이는 우리 반의 김정호, ‘영고이 정고이...’ 등 7대 명불 등과 함께 상습 월담자로서 그들의 관심은 유치하게 영화 따위를 보는 정도가 아니라 인근 여학교의 성채 주변을 염람하거나 고관앞 쌍과부집에 가서 술과 담배를 하는 등 고차원적으로 놀았다.

 

# 텍사스촌 탐험기

별난 아이들에게 나바론쯤이 무슨 장벽이 될까마는 굳이 그런 험난한 코스를 취하지 않고 정공법(?)으로 교문을 이용하는 유파도 있었다. 그 대표적 인물이 이상태(종로 보혜한의원장)다, 특히 그는 "내게 교칙 따위를 묻지 마라. 내게는 교칙위반이 따로 없다, 학교생활에서 내가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모졸시리 교칙휘반이라고들 하니 어떤 것이 위반이고 어떤 것이 아닌지 알 수 없다" 할 정도로 교칙과는 담을 쌓고 지냈다, 학교를 졸업할 때 졸업소감을 물으니. "이제는 수위를 공갈, 협박하지 않고도 당당히 교문으로 나갈 수 있게 되어 좋다"고 하였다. 그는 순진하게 '나바론'을 특공대처럽 넘은 것이 아니라 언제나 당당히 수위를 으름장 놓아 유유히 교문으로 통행하였던 별종이다.

반면, 분류도의 '애절비련파'에 속하는 황선우(삼성전자서비스 사장) 군처럼 이 방둑을 넘는 '클리프 행잉'을 몇 번 해보고 스스로 佛家的(불가적) 깨우침을 얻는 자도 있었다. 및 번 담을 넘어본 그가 토한 悟造頭(오도송)에 이런 구절이 있다. "역시 도둑질은 못해 먹을 짓이라 생각했다." 이 얼마나 생생한 현장 체험에서 얻은 진리의 깨달음인가.

이 루트가 붐빌 때는 나가는 팀과 돌아오는 팀이 서로 遭過(조우)하는 경우도 있었다. 동 학년 같으면 서로 획 웃고 말지만 학년이 틀릴 경우 저학년들은 달아나기 일쑤였다. 그러면 고학년들은 "야, 이놈들 거기 서! 거기 안 서?" 하면서 쫓아가는 시늉을 하였는데, 이거야말로 도둑이 도둑을 나무라는 웃지 못할 광경이었다.

이 나바론을 넘어가서 텍사스로 가는 금단의 지역을 탐험하거나, 여고생을 현팅하여 재미를 보다 문제가 된 학생도 있다. 이상O군은 그 무용담을 시리즈 형식으로 쉬는 시간이면 입에 거품을 튀겨가며 신나게 이바구를 하였는데 우리는 그런 그가 무척 위대해 보였고 다음 번 거사시에는 꼭 끼워달라고 아첨 떠는 놈까지 나왔다. 다음은 그 이모군의 무용담 중 하일라이트회 한 대목.

 "그 날도 및몇이 어울려 '나바론'을 넘어갔다. 마침 찾아간 극장이 전에 본 영화를 상영하고 있어 우리는 늘 선망의 대상이던 중앙극장 뒤쪽으로 이어진 초량 '텍사스' 촌을 답사하러 갔다. 좁은 골목으로 살금살금 들어가니 영어간판에 울불불굿 원색적인 못을 입은 여인들이 오고가는 것이 마치 딴 나리에 온 것 갈았다. 대낮인데 술집 앞에 내놓은 의자에 코쟁이가 앉아 거의 옷을 벗다시피 한 여자를 무릎 위에 올리놓고 입을 쪽쪽 맞추는 것을 보고 을매나 놀랐는지 모른다. 아, 저것이 소위 양갈보구나, 보대체 은밀히 숨어서 해도 낯뜨거울 일을 백주 대낮에 서로 만지고 키스를 해쌓는데 (그 때는 영화장면도 키스신은 섀도우로 기렀던 시대다) 볼라카이 참말로 환장하겠더라. 우리는 안보는 척 하면서로 흘금흘금 쳐다보고 또 쳐다보았는데 그들은 무슨 짐승처럼 우리가 쳐다보든 말든 하던짓을 계속하고 있었다. 모두 들 얼굴이 벌거무리 하이 해가지고 입벌리고 있는 꼴이 내가 봐도 우스워 어디 살짝 들어가서 한잔하자고 했지. 일행이 서부영화에 나오는 나비 날개 갈은 '싸롱' 문을 쓱 밀치고 불어갔는데 아이고 마, 마치 무슨 영화관 같이 어두컴컴한 실내에서 묘한 냄새와 신음소리가 여기 저기 들리는 게 앙이겠나, 플로어에는 굵은 비트음악에 술 취한 여자가 몸을 비꼬며 춤을 추고 있고, 숨이 컥컥 막혀 우물주물 하고 있는데 마, 카운터에서 학생복을 입은 우리를 보고 막무가내로 내치는 바람에 그 좋았던 광경을 더 미상 못보고 말았능 기라."

 

그때는 이런 거짓말 같은 참말이 어찌나 재미있든지 들어도 들어도 지루한 줄 몰랐다. 고교생으로서 이런 별난 추억거리를 갖고 있는 것은 당시 유일하게 외항선원들이 드나드는 적선지대가 다행히도 학교 가까이에 있었던 덕택이다.

우리 부고생들만의 특혜였다고 할까. 하여튼 그 이국적인풍경은 감수성 예민한 학생들에게 3년 내리 강한 충격을 주었던 것이 사실이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그 텍사스촌은 상존하며 이제는 러시아 보따리장사까지 가세한 이국인들로 국제쇼핑거리가 되어 성시를 이루고 있다고 한다.

나바론을 넘나든 아이들이 어찌 3학년5반 만이랴. 이 글이 연재되면서 5반 아닌 아이들의 이야기는 왜 없느냐고 항의가 빗발쳐 이번에는 다른 반의 경우를 예로 든다. 김영철(전상공부 차관), 김정수(전 한국통신 기획실장, 현 넷츠고 사장), 김경욱(한국외대 교수), 배영근 등은 공부도 잘했지만 노는데도 일가견이 있어 한 때 당구에 미친 적이 있었다. 무엇이든 한번 하면 뿌리를 뽑고야 마는 부고인의 근성들인지라 이들은 어느 오후, 단체로 나바론의 벽을 넘어 초량역앞 '철도 당구장'에 각개전투로 집결하였다. 가서 책가방을 팽개치고 교모를 쓴 놈, 벗은 놈, 팔뚝을 걷어붙이거나 아예 교복을 벗고 런닝구 바람 등으로 한참 내기에 열이 붙어 '아까도리' 판에 '쓰리쿠션' 을 돌리고 있는데 난데없이 훈육주임 이덕주 선생이 들이닥쳤다. 대낮에 학생들이 공부는 아니 하고 당구장을 점령하여 떠들썩하게 당구를 치는 꼴을보다 못한 다른 손님들이 학교로 신고를 한 것이었다.

"요놈들, 다들 이리 나왓!"하고 외치는 소리를 뒤로하고 누군가 "토끼자!" 하는 소리를 신호로 일제히 산지사방으로 튀었다. 한참 정신없이 달리는데 사람들이 자꾸 쳐다보는 것 같아 이상하다싶어 영철이가 옆을 돌아보니 영근이가 당구장에서 치던 큐대를 그대로 쥐고 달리는 게 아닌가. 그래 "야, 영근아, 큐대 놓아라, 큐대!" 하고 외쳤다. 영근이는 엉겹결에 도망을 친다는 것이 책가방 대신 '큐'대를 쥔 채로 달아났던 것이다. 자기가 '큐'대를 쥐었는지도 모르고 달리던 영근이가 그 말을 듣고서야 잡고 있던 '큐'대를 내려다보니 제 꼴이 마치 적군을 치러 창날을 들고 돌진하는 보졸꼴이더라는 것이다. 그 꼴이 어찌나 가관이었는지 그 총중에도 서로 쳐다보고 키들키들 웃었다고 한다.


#'큐' 대를 들고 튄 용사들

한편, 이들과는 다른 방향으로 도망치던 경욱이와 정수는 불행히도 선생에게 붙잡혔다. 교무실에 끌려가 달아난 공범의 이름을 대라고 닥달 받았으나 이들은 끝까지 불지 않고 버텼다. 막판에 형량을 감해 주겠다는 선생의 고등전술에 넘어가 이 둘을 불고 말았다. 그래서 먼저 잡힌 놈 둘은 유기정학, 끝까지 시치미를 떼고 있던 영철이와 영근이는 뺑소니 죄가 가중되어 무기정학처분을 받았다. 사실은 훈육선생도 이들을 훈육정도로 끝내려고 했는데, 외부에서 신고가 들어온 사안이라 그 정도로 처리해버릴 수 없다는 공론에 따랐다고 한다.

이리하여 다들 정학을 당했는데 그 다음이 난감했다. 정학보다 더 무서운 게 이 일이 집에 알려지는 일이었다. 그래 영철이는 정학통고서가 우편으로 배달될 것을 짐작하고 집 문 밖에서 우체부 아저씨를 몇 날 며칠을 기다리려 무사히(?) 우편물을 중간에서 가로채는데 성공하였다. 그런데, 일은 엉뚱한 곳에서 터졌다. 당시 그의 부친은 인근 경남여고 교사로 재직하고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부산고에 친구교사 (박용성 선생님)가 있었다. 박용성 선생님은 친구의 아들인 영철이의 정학사실을 응당 그 부친이 알고 있는 줄 알고 위로차 전화를 걸었다.

 "김 선생, 자네 당구 칠 줄 아나?" 하고 묻자 당구란 '당'자도 모르는 영철이의 부친이 "당구는 무슨 당구, 난데없이 당구는 무슨 소린가?"

"그럼, 자네는 아들보다 못한 아비로군. 자네 아들 영철이 는 당구 실력이 좋다고 학교에 소문이 났는데."

"영철이가 당구를 친다니 그게 무슨 소린가?"

"아니, 아직 몰랐나? 영철이가 무기정학 당한 사실을?"

아들이 당구를 친다는 이야기만 해도 놀라운데 수업을 빼먹고 몰래 당구를 치다가 그것도 뺑소니로 잡혀 무기정학 처분을 받았다니 이 경천동지할 사실에 기절초풍한 부친이 자초지종을 물어 사건 전모를 알게 되었다. 그 뒷이야기는 독자들의 상상에 맡긴다. 아무튼 정학 받은 네 명 모두 집안에서 혼들이 났는데, 이 사건으로 그 단짝들이 유기정학파와 무기정학파로 갈리면서 서로 '우리를 버리고 저들끼리만 도망간 비겁자' 라느니 '자기들만 살려고 친구를 팔아먹은 배신자' 라느니 서로 만나기만 하면 으르렁거리며 목청을 돋우었다고 한다.

그런데, 정작 희한한 일은 이들 모두 당구파들이니 얼씨구나 정학 중에 당구장에 실컷들 갈 법한데 거기엔 얼씬도 않고 학교에만 나왔다는 것이다. 정학이니 수업에는 못 들어가고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등 설움을 톡톡히 받았다.

이 일을 계기로 이들은 개과천선, 더욱 열심히 공부하여 원하는 대학에 모두 진학을 하였을 뿐 아니라 사회에 나와 일가를 이루었다. 지금도 만나면 이들은 그때 일을 얘기하며 배꼽을 잡는다고 한다. 뒤에 한 나라의 차관급까지 올라간 자가 고교시절 이런 무기정학 전과가 있었다면 믿을 것인가?

이러한 추억들이 진한 우정으로 남아 늙어 가는 동창을 서로서로 묶어주는 구실을 하는 것을 보면 그때 공부밖에 몰랐던 '쪼아링파' 들만 불쌍하다 하겠다. 공부는 정말 공부밖에 못하는 사람들이 하는 것이다. 세상은 공부 말고도 할일이 너무 많다. 세상은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에서 이어지고 꽃이 핀다. 그 관계는 해프닝과 에피소드가 있어야 오래간다. 고교시절의 에피소드는 그 바탕이 순수하기에 언제들어도 새롭고 그리운 것이다. 지난 일은 되돌릴 수 없는 것이니 지난 날, 공간과 시간을 함께 한 친구들이라면 미워했든 좋아했든 그 추억은 소중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10월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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