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고야사 [제6화] 그래되믄 얼매나 좋겠노

2024-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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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2004년 4월 ×일 오전 10시 정각, 재작년 까지만 해도 김일성 종합대학으로 불리던 평양대학교 대강당을 빌려 제1회 청조인 이북5도대회(以北五道大會)가 열렸다. 개막식은 식순에 따라 착착 진행되어 장소가 장소인 만큼 마지못해 맨 마지막으로 집어넣은 김정일의 축사(祝辭)도 이제 거진 끝나간다. 망부(亡父) 김일성을 대신해서 54년전 육이오전쟁을 일으킨 데 대해 심심한 유감과 사죄의 뜻을 표한다든가 어쩐다든가 하면서 그 부분은 어물쩡 넘어가 버리고 평양시민의 열화 같은 요청에 의해 이번 제17대 국회의원선거에 출마하게 되었으니 청조인 여러분들의 뜨거운 성원을 부탁드린다는 말에 나는 속으로-평양시민 좋아하시네! 그 사람들, 열화는 커녕 속아 살아온 지난 세월에 지금은 이를 북북 갈고 있는데-하며 씨도 안먹힐 소리에 콧방귀를 뀌고 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여기 저기서 몇몇 동문(同門) 들은 아주 노골적으로 키득 키득 웃는 소리까지 들린다.

김정일의 그 비게덩어리 몸매가 재작년 이후 장작개비 처럼 초췌해지는 몰골이 한편으로는 측은스럽기도 했지만 아무튼 통일이 된지 2년만에 이북출신 동문들을 비롯 전국 방방곡곡의 선후배 동문들이 구름떼 처럼 평양에 모여 그런 성대한 잔치가 열렸고 영광스럽게도 본인은 동창회 회보에 실릴 참관기(參觀記)를 쓰달라는 청탁을 받고 올해 진갑(進甲)이 된 노구(老軀)를 이끌고 참석하게 되었는데 최옹(崔翁)은 그 나이에 벌써 노망기가 들었는지 진행취재(進行取材)는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아까부터 저쪽 한귀퉁이에서 연신 눈시울을 찍어내고 있는 동창생 호일(姜豪–)의 동태를 살피느라 여념이 없다.

 

50년대에 육이오를 겪은 동문들은 새삼스러운 기억이 아닐테지만 당시에 초중고등학교를 다녔던 학생들 중에는 피411난을 내려온 동기생들이 대단히 많았다.

호일이도 평안남도 성천이란 곳에서 삼팔따라지로 피난을 내려와 최옹과는 국민학교 3학년 때 부터 동긴데 그때 담임선생을 따라 교실로 들어서던 그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내래 강호일이야. 니북에서 3학년을 다니다가 이년을 쉬었으니깐 진짜룬 오학년이디. 잘해 보자우야. 내래 열심히 공부해서 너들 하구 참한 친구가 되가서, 고오름."

친구들한테 자기소개를 하라는 첫인사가 그랬는데 교실은 온통 웃음바다가 되고 호일은 선생님으로부터 호되게 알밤 한대를 쥐어박힌 다음 맨 뒷자리에 가서 앉았다.

"인드라야, 자기소개를 할라카믄 나는 누굽니다. 이북에서 이래 이랬으이까 오늘 부터 우리 정다운 친구가 됩시다. 그래야지. 자슥아, 나이가 많았으면 많았지 니가 깡패가?"

우리 보다 한뼘 쯤 키가 컸고 얼굴도 우리 또래들 보다 꽤 어른스러워 보이던 호일이는 우리 보다 실은 세살이나 많았고 말씨가 우락부락하게 들려서 그렇지 마음씨는 그렇게 착할 수가 없었다. 걸핏하면 세살이나 어린 친구들한테 얻어터지고 엉엉 울던 꼴은 또 얼마나 우스웠던지…

"가러지 마. 내래 싸울 줄은 몰라야. 말루 하자우, 말루. 고오름."

그 소리가 재미 있고 무슨 까닭인지 그럴 적 마다 가랑이 사이를 움켜잡고 뱅뱅 도는 꼴이 더욱 재미 있어서 애들은 아무 것도 아닌 일을 가지고 툭하면 시비를 걸었고 호일이는 또 영문도 모르는 채 얻어터졌다. 고교시절에 공부도꽤 잘해서 명문 K대학교를 졸업한 호일이는 차츰 친구들 한테 인기도 대단했는데 단지 한가지, 술만 걸쳤다 하면 개차반이 되는 게 험이었다.

"우리 할아바지 때문이야. 우리 식구들 다 내려왔는데 우리 할아바지만 집을 지킨다구 앙이 내려오셨거든. 내래 술만 마시믄 할아바디 생각이 나서 미치가서야."

술이 깨면 입버릇 처럼 그렇게 둘러댔는데 피난을 내려와 우리 동네에서 셋방살이를 했던 호일의 집안사정을 최옹은 일찌감치 훤히 알고 있었다. 위로 누나가 둘, 아래로 또 여동생만 셋인 호일은 이북에서 할아버지의 귀여움을 독차지하며 자랐단다. 피난을 내려오던 그날도 할아버지는 다른 식구는 다 제쳐놓고 호일이만 불러서 무르팍 위에 앉혀놓고 이렇게 말했다고 자기 어머니가 그랬다.

"호일아, 네놈 새낀 우리집 4대독자야. 강씨문중 대들보니낀 네놈 새끼 몸은 천금 보다 귀해. 알간? 그러니낀 다른 간나들 하고 절대루 싸우디 말라우. 그러다 다치기라도 하믄 대가 끊기니낀. 아니디, 사내새끼가 한번두 싸우디 앙이하고 자랄 순 없갔디. 길티만 그럴 땐 요기 꼬추랑 봉알은 꼭 쥐고 싸우라우, 알간?"

할아버지는 동구밖까지 따라나오며 그런 당부를 수십번도 더 했다고 한다.

그 얘기가 친구들한테 전해지면서 그후로는 아무도 싸움을 걸지 않았고 도리어한겨울에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다가 어느 집 담벽에 호일이가 오줌을 쌀라치면 친구들은 그 주위를 빙 둘러싸고 이렇게들 말했다.

"언다, 언다. 끄트머리 까정 꼭 쥐고 싸거래이."

친구들의 그런 부추김 때문인지 호일은 술만 마시면 제 할아버지 얘기로 술자리를 시들하게 만들었고 끝내는 허공에 주먹을 휘두르며, 심한 경우는 의자나 유리창을 닥치는대로 때려부시면서 이렇게 고래고래 고함을 쳐서 친구들을 혼비백산하게 만들었다.

"쌍! 김일성이 나오라우! 김정일이 나오라우! 내래 때려죽여 버리가서! 기래, 내래 꼬추봉알 다 떨어져 나가두 그 간나새끼들 기냥 두지 않카서!"

길가에서 그걸 내놓고 그런 추태를 부릴 때는 참으로 가관이었지만 그럴 때 다른 친구들은 몰라도 최옹은 그 곁에서 말없이 줄줄 눈물만 홀렸었다. 그렇던 호일이가 재작년 정초, 통일기사가 연일신문의 톱기사로 실리던 그 무렵의 어느날 최옹의 귀에 대고 속삭이듯 이렇게말했다.

"이보라우 최가야, 내래 이제 술 앙이 먹가서. 우리 할아바지 만나믄 내래 절대루 술 앙이 먹갔다구. 참말이야, 두고 보라우,"

통일이 되자말자 호일은 득달 같이 고향 성천으로 달려갔었고 이미 육이오가 터졌던 그해 가을 악질지주로 몰려 처형을 당한 그의 할아버지 산소 앞에서 그는 사흘 낮밤이나 식음을 전페하고 통곡을 했었다.

"할아바지, 이젠 편히 주무시라요. 할아바지 분부대로 고거 잘 간수해서 내래 지금 아들만 셋이니낀."

그러는 호일이 곁에서 최옹은 또 얼마나 울었던지… 암튼 그런 호일이가 약속대로 재작년부터 술은 절대로 입에 대지않는다. 그리고 지금 청조인 이북5도대회에서 그렇게 죽여버리고 말겠다던 김정일을 저렇게 바라보며 질질 눈물만 짜고 있는 것이다. 노랫말 그대로 통일이여 오라! 다른 사람은 몰라도 호일이한테는 정말 꿈에도 소원인 통일이여 오라! 그래서 그저께도 무교동 사거리에서 그걸 까내놓고 고래고래 지랄발광을 치다가 직결재판소로 넘어간 내 죽마고우 호일이가 이제는 제발 술을 딱 끊었으면 … 그래되믄 얼매나 좋겠노?

<10월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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