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조춘추

무어라 부르리까? / 2020년 10월호

관리자
2020-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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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 1> 

                그: 아버님, 여기 좀 보고 가세요. 

                나: 쉿, 날 모르는 척하게. 저기 내 아내가 오고 있어. 

                그: (어리벙벙) 

                나: 내게 자네같은 숨겨둔 아들이 있는 걸 아내가 안다면 난 당장 다리몽둥이가 부러진다네. 

<대화 2> 

                그: 아버님. 

                나: 난 자네 어미와 아무런 육체적 정신적 관계가 없다네. 그런데 어찌 자네의 아비란 말인가. 

<대화 3> 

                그: 아버님, 뭘 찾으시나요. 여기 좀 보고 가세요. 

                나: 젊은이는 집에 아이가 있소? 

                그: 네. 네 살 난 딸이 있지요.(요즘 부모들, 아이 얘기만 나오면 정신이 혼미해짐.) 

                나: 그 아이 참 예쁘지요? 

                그: 그럼요. 그 애 키우는 재미에 이렇게 열심히 일한답니다. (더욱 혼미) 

                나: 그렇군요 그런데 그 애가 길에 나가 아무나 '아빠'라 고 부른다면 그대 기분은 어떻겠소? 

                그: ...... 

                나: 지금 젊은이의 아버님 마음이 그러할 거요. 


넘쳐나는 아버지들 

가끔 거리에 나가면 나를 아버님이라고 부르는 젊은이들을 만난다. 아마도 친절하게 대하라고 그렇게 교육받은 모양인데 세상이 막돼먹어가고 있는 징조이기도 하다. 세상에 귀한 이름이 둘 있으니 '어머니'와 '아버지'라는 이름이다. 이는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천하에 귀한 이름이 고, 함부로 남발할 수 없는 이름이다. 때로는 친부모님 모시듯 자식의 예를 갖추어 효도하겠노라는 정성을 담아 드리는 경우가 있을 텐데, 이런 모습은 보기에도 아름답다. 그러나 요즘 거리에서 내게 쏟아지는 '아버님'이라는 말은 호칭의 거품이고 인플레여서 듣기에도 역겹다. 

허기야 한때는 남편을 '아빠'라고 부르던 적이 있었다. 그래서 그 사이에 난 아이들은 아빠의 자녀이니 엄마와는 자매나 남매가 되고, 남편이 아빠라면 생각하기도 민망한 일들이 얼기설기 얽혀서 뒤죽박죽이던 시절도 있었다. 지금의 남편은 '오빠'가 되어 있다. 남편 말고도 선배, 친구, 옆집 총각, 애인 등이 두루 오빠인데 여기서 진짜 오빠는 별 볼 일이 가장 적다. 


호칭은 대화의 시작 

인간관계는 대화로 이루어지고, 호칭은 대화의 시작이어서 가장 중요한데 그래서 어렵다. 가족끼리 호칭도 쉽지 않다. '형수님'은 쉬운데 '제수씨'는 입이 근질근질하고, '형부'는 정다운데 '제랑'은 아는 사람도 드물다. 요즘은 그 자리를 '제부'가 꿰차고 들어앉아 있다. 조금 건너 시누이 남편쯤 되면 안 부르는 게 낫다. 

부부간에 사랑을 담아 부르는 '당신'이라는 호칭도 상대에 따라 시비의 빌미가 되기도 한다. 영어를 쓰는 사람들은 호칭에 대한 부담이 없다. 아무나 이름을 마구 불러대는데, 엄마를 이름으로 부르는 아이도 드물지 않다. 우리나라 엄마들은 엄마가 되면서 본명은 장롱 깊이 들어가고 '누구 엄마'로 개명한다. 

학생이 교수의 이름을 부르면 교수의 총애를 받는다는 뜻이고, '아무개 교수님'이라고 성에 경칭을 붙여 예의를 갖춘다면, 곧 낙제할 징조라고 보아 틀리지 않는다. 이름을 불러달라는 이에게 '미스터 아무개'라고 경칭을 쓰면 친구하기 싫다는 뜻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호칭이란 문화나 환경에 따라 변한다. 외국에서 노랑머리 간호원이 나를 석대라고 부르는 건 이상하지 않은데, 지금 우리 직원이 나를 석대라고 부르는 건 사표를 써 놓고도 어림없는 일이다. 나는 어떻게 불리기를 원하는가? 낯선 사람끼리는 '선생님' 정도가 무난하리라고 생각하다가 진짜 선생님들이 “선생은 아무나 하나?” 불평할까 염려하던 차에, 기차에서 만난 점잖은 신사가 무릎을 칠 만한 답을 가르쳐주었다. "선배님, 어디까지 가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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