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조에세이] 걸으니까 행복하다 _ 김동호(14회)

관리자
2022-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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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으니까 행복하다


 김동호 (14회)

 

재경 14회 산악회는 매주 토요일 북한산에 오른다. 지난 7월 23일에도 동기생 8명이 북한산성 국녕사 아래 인적 드문 숲속 작은 계곡가에 자리잡고 놀았는데, 그 옛날 하동이 되어 거풍하는 이도 있었다.


비내리는 밤, 6시간의 산속 조난

이날 하산 때 일행 중 한 명이 혼자 산길 대신 물이 마른 작은 계곡을 따라 내려가다 오후 2시부터 밤 8시까지 6시간 동안 실종된 사고가 발생했다. 작은 계곡이 큰 계곡과 만나는 지점 큰길가에서 그 친구를 기다리던 우리는 도착 예정 시간 10분이 지나 그에게 핸드폰을 해도 받지 않아 119 구조 신고를 했다. 그와 동시에 동기생 중 두 명이 길을 되올라가 그가 걸었을 지계곡 3백 미터를 내려오며 찾았고, 세 명은 혹시나 해서 큰 계곡 5백 미터 거리를 물속을 걸어 거슬러 오르며 찾았으나 헛일이었다.

출동한 119대원 두 명이 재차 지계곡을 뒤졌지만 아무 흔적을 발견하지 못하자 산악구조대와 경찰까지 동원됐고, 얼마 지나 그 친구가 떨어뜨린 핸드폰을 찾아냈다. 산속은 빨리 어두워지는 데다 비까지 조금씩 내리고 있어 우리는 그의 저체온증을 염려하며 노심초사했다. 이윽고 밤 8시쯤 등산 입구 산악구조대 사무실에서 대기 중이던 그의 가족과 동기생들에게 실종자를 발견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우리는 일제히 '와!' 환호성을 지르며 구조대원들에게 무한한 감사를 느꼈다.

응급차에 실려온 그는 다리에 가벼운 찰과상만 입었을 뿐, 정신은 말짱했다. 곧 시내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그는 "내려오다 넘어져 핸드폰 잃어버린 걸 나중에 알고 다시 되돌아가 찾으려고 헤매다 찾지 못하고 탈진, 한 걸음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고 술회했다.

 외진 산속에 고립무원으로 누워서 그가 어떤 생각을 했으며, 어떤 장면들이 그의 뇌리를 스쳐 갔는지 스스로 밝히지 않아 알 수 없으나, 외롭고 막막한 절망의 그 시간에도 한 가닥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으리라. 그러다가 스르르 잠이 들고 말았으리라.

생텍쥐페리가 쓴 '인간의 대지'에 남미 안데스 계곡에 혼자 추락한 우편 비행사의 조난 얘기가 나온다. 그 비행사는 큰비가 내려 자신의 몸이 떠내려가 실종되면 그의 가족이 사망보험금을 탈 수 없게 되는 법 규정을 떠올리며 나중에 그의 죽은 몸이 발견되도록, 비록 중상을 입었지만 몸을 조금이라도 더 높은 곳에 두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움직이는 것이었다.

이번 산우의 6시간 조난은 14회 산악회 40년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그의 기적적인 구조는 천운이오, 놀라운 은총이다. 그리고 우리가 매년 이른 봄 북한산 시산제 때 기원한 산신의 굽어살핌이 아니겠는가. 감사하다.

 

감사는 행복과 장수의 비결

부산고의 교훈 '감사하자, 굳세자, 힘쓰자'에는 깊은 뜻이 담겨 있다. 지금 살아 있음에 즐겁고, 만날 수 있음에 감사하면서 현실을 받아들이면 모슨 것이 다 보인다는 것이다.

올해 79세인 이근후 이화여대 명예교수 (정신과 전문의)는 퇴직 후 왼쪽 눈의 시력을 완전히 잃었고, 의사였음에도 당뇨병 · 통풍 · 허리디스크 등 일곱 가지나 중병을 지니고 있다. 그는 “남은 한쪽 눈으로 아침에 햇살을 느낄 수 있고, 기쁨과 슬픔과 사랑을 느낄 수 있다. 이 얼마나 감사할 일인가?" 라고 말했다. 감사만큼 강력한 스트레스 치유제는 없다. 작거나 하찮은 일에도 감사하는 자세가 장수의 비결이다.

늙은 남편이 아침에 눈을 떴다고 아내에게 얻어맞았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지만, 우선 아침에 눈을 떴다는 사실에 감사하자. 내 의지대로 걸을 수 있음에 감사하고, 따뜻한 친구가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아직은 남과 나눌 것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자.

 나는 요즘 일주일에 5일은 걷는다. 산기슭 둘레길, 동네 한바퀴,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 등등. 걷기의 장점은 무엇인가? 걷기는 머리에서 발끝까지 운동이 되고, 걸으면 머리가 맑아지고 기분이 좋아진다. 그래서인지 걷는 중에 의외의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한다.

오늘도 걷는다마는, 정처 있는 이 발길. 어느 집 담장을 넘어오는 목백일홍과 접시꽃이 붉다. 고개 들어 저 멀리 하늘을 한번 바라본다.

영국의 시인 윌리엄 워즈워드는 어려서는 물론 어른이 되어서도 그러했지만. 늙어서도 하늘의 무지개를 바라보면 맘껏 뛰놀기를 소망했다. 서산에 해가 뉘엿뉘엿 있는 져가는 들녘을 걸어가고 있는 나는 가슴속에 무엇을 간직하고 있는가. 아직도 환상과 호기심? 혹은 하고 싶은 일? 젊을 땐 '영원히 살 것처럼 꿈꾸고, 내일 죽을 것처럼 오늘을 살리라' 맹세했건만, 돌아보면 굽이굽이 넘던 고갯길이 아득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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