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스승, 지셴린 / 2020. 3월호

관리자
2020-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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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우 | 25회·前 한국산업은행 중국본부장 


내가 중국인 지셴린(季羨林) 선생을 알게 된 것은 2009년 4월 베이징에서였다. 출장온 후배가 주고간 『다 지나간다』라는 책은 그의 인생철학을 담은 우리말 번역 판이었는데 펴자마자 나는 가뭄에 단비 만난 듯 삶의 진리에 젖어들었다. 

그해 7월 지셴린(季羨林) 선생이 98세로 세상을 뜨자 중국 전체가 ‘인간 국보’의 죽음을 애도했고 우리나라 신문도 이를 크게 보도했다. 지셴린(季羨林) 선생은 베이징대학에서 교편을 잡던 중 문화 대혁명을 맞아 온갖 고초를 당하면서도 학문연구를 게을리하지 않았고 뒤에 베이징대학의 부총장을 지냈다. 학문적 업적도 대단하지만 무엇보다도 고매한 인품으로 더 존경을 받았던 그는 중국 정·관계나 학계에서 난더후투(難得糊途) 경지에 오른 대표적인 인물로 유명했다. 난더후투란 잘난 사람이 자신의 실력을 감추고 어리숙하게 행동할 수 있는 수양의 최고 경지를 의미한다. 

마땅히 해야할 일을 하면 걱정이 없으리 “거칠고 변화 많은 세상사 무엇을 기뻐하고 무엇을 두려워하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면 걱정할 것이 없으리.”라 는 도연명의 시구(詩句)를 좌우명으로 삼았던 선생은 말했다. “완벽하지 않은 것이 인생이요 삶”이라고. 그러므로 살아가는 데 있어 어떤 일을 당하더라도 평정심을 유지하라고 했다. 

그해 연말 임기 연장의 불확실성으로 30년 다닌 직장을 떠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하루하루가 초조하던 때 그의 이 말은 나에게 큰 힘이 되었고 마음의 안정을 가져다주었다. 더 이상 불안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지금까지 주어진 것에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늙어가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결코 게으르게 행동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인생은 길지 않으니 낭비해서는 안 된다며 스스로 50년이 넘도록 매일 새벽 네시면 일어났다. 나이 들어 할 일 없음을 걱정 말고 열심히 공부하라고 했다. 사람의 머리는 쉬게 내버려 두어서는 안된다며 말 년까지 독서와 글쓰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인생 후반기에 배운 ‘잘 사는 방법’ 또한 노인에게 가장 큰 재앙은 ‘자기 폐쇄’라며 세상과 벽 을 쌓지 말고 마음의 문을 열고 젊은이들과 함께 부대낄 것을 요구했다. 지금도 하고 있는 나의 중국어 공부와 매일 운동 습관은 그의 가르침에 힘입은 바 크며 죽는 날까지 공부 하는 ‘영원한 학생’이 되리라 생각해 본다. 

또한 집은 언제나 아늑해야 한다며 가정의 화목을 강조했다. 집이 화목해질 수 있는 방법은 정직과 인내뿐이라고 말하며 서로 사랑하고 이해하면 가정은 화목해지고 무한한 기쁨을 누리게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당나라 시절 장공예(張公藝)라는 대관의 가정을 예로 들었다. 당시 장대관의 집은 화목하기로 소문이 났다. 황제가 그를 불러 가정이 화목한 비결을 묻자 대관은 그 자리에서 참을 인(忍)자를 백(百)개 썼다는 것이다. 나는 이 백인사상(百忍思想)의 열렬한 전도사가 되어 가정의 갈등을 호소하는 이를 만나면 이 비법을 전해주고 있다. 

내 나이 50대 후반에 그의 가르침을 알게 된 것은 행운이었다. 불완전한 것이 인생이니 어떤 일을 만나도 평정심을 가져야 하고 가정의 평화를 꼭 지키고 나이 들어서도 남과 적절히 잘 어울리며 게으르게 행동하지 말라는 그의 가르침 을 통해 인생 후반기에 ‘잘 사는 법’을 배웠던 것이다. 

새해를 맞아 작은 다짐을 한다. 올해는 만나는 이마다 ‘열 린 마음’으로 다가가리라. 아침 운동과 중국어 공부를 계속함은 물론 시간 내어 도서관을 찾아 책을 읽고 글을 쓰리라. 

직접 만나지 못한 스승이지만 그는 나의 정신적 지주로서 이렇게 살아있다. 그때 그 책은 언제나 나에게서 가장 가까운 곳에 꽂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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