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석_ 유자효 동문(19회, 시인) : ‘나잇값’에 어울리는 열일곱 번째 시집『신라행』

관리자
2021-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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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잇값’에 어울리는 열일곱 번째 시집『신라행』

유자효 동문(19회, 시인)


유자효 시인의 열일곱 번 째 시집『신라행(新羅行)』이 올 3월에 나왔다. 1967년과 1968년 신아일보를 통해 시조와 시로 등단하였고, 1982 년 첫 시집『성 수요일의 저녁』을 펴낸 지 39년 만이다. 반세기의 시력(詩歷)과 더불어 첫 시집 이후 39년 만에 열일곱 번째 신작시집이면 시인의 농사로는 풍작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재경 청조인들에게 시인 유자효 동문은 무척 낯익은 이름이다. <청조인>의 신년시나 이런저런 기념할 만한 행사의 축시는 물론 여러 행사의 진행 등으로 알려졌고, <청조인> 편집위원장을 역임한 후 현재 편집고문을 맡고 있으며, 2018년의 청조포럼 연계행사였던 문화기행에도 앞장섰다. 김성우(6회), 김수남(9회), 박성훈(16 회) 등 청조의 인맥에 의해 태어나고 전국 행사로 발돋움한 한국 시낭송(詩朗誦) 운동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주역의 한 사람이다. 


유자효 동문이 등단한 지도 반세기를 훌쩍 넘겼지만, 문필은 학창 시절부터 이름을 떨쳤다. 부산중학교 3학년 때 교내 백일장 장원을 시작으로 고등학교 입학하자마자 4월의 진해 군항제와 5월의 3.15기념 마산문화제 백일장에서 장원을 차지함으로써 영남 일원의 다양한 축제에 부산고 대표 글짓기 선수로 분주한 나날을 보냈고, “시만 생각하는 생애를 살고 싶다.”는 꿈에 부풀어 있었다. 당시 부산의 고교생 문학단체 인 ‘부산문우회’에서도 활발하게 활동했다. 시집『신라행』에 대해 작품 해설을 한 이승하 시인은 “서 정주의『신라초』(1961) 이래 신라의 정신을 본격적으로 탐색한 시집은 유자효 시인의『신라행』이 처음이 아닌가 한다.” 라고했는데, 여기서 시 한수를 감상하는 것도 좋을성 싶다. 

*고교시절 부산문우회‘밤·시·젊음의 초대’에서 시 낭송하는 유자효 동문(1965) 



‘신라는 죽지 않는다’-신라행4


2천 년 전에서 천 년 전처럼 

늠름한 낙동강 푸른 물처럼 

서라벌에서 개경으로 그리고 한양으로 

수도는 바뀌었어도

고려에서 조선으로 그리고 대한민국으로

이름은 바뀌 었어도

신라는 결코 죽지 않았고

이를 잊지 않는 한

버리지 않는 한

조각난 한민족 의 마음을, 뭍을, 물을, 하늘을

끝내 하나로 아우를

단단함이여

우리신라여 


유자효 시인은 ‘시인의 말’에서 신라행 등 1부 15편의 시는 ‘신라 사람들을 만나면 물어보고 싶었던 궁금증’이라고 했고, 우리 생애 초유의 팬데믹 코로나19를 겪으며 썼던 시를 2부에 모았으며, 3부는 처음 겪는 노년의 발견들이라고 했다. ‘겪어보니 가슴 설레는 노년’에 쓴 시를 모았 다는 3부에서 ‘대상포진’이라는 작품이 눈에들어온다. 


제가 무엇이라고

이렇게 긴 수명을 주시는

고마운 하느님

가지가지 아픔도 겪게 해주시는

무서운 하느님

육신에 서 힘을 뺏어가시고

마음에서 추억을 가져가시고

이제는 온 몸을 채찍으로 후려치시니

오래 산 벌을 받는 것인지

얼 마나 더 고통을 겪어야

누더기 같은 영혼

거둬가실지

사랑으로 가득하신 하느님

미운하느님


 ‘대상포진’이란 시를 읽으며 얼핏 고등학교 국어시간에 배웠던 ‘애이불상(哀而不傷)의 시 정신‘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슬퍼하되 상하지 않는다.’는 뜻의 이 말은 <논어>의 ‘팔일 (八佾)편’에서 유래한다고 하는데, ‘슬퍼하더라도 지나쳐서 몸과 마음이 상할 정도에 이르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이 말이 “나름대로 저를 지켜 여기까지 왔으니 남에게 폐 끼치지 않고 여생을 완주하고자 합니다.”라는 시인의 말과 겹쳐졌기 때문이다. 


‘누추한 글의 감옥’과 나잇값


 "평생 시를 쓰면서 살겠다."는 시인의 꿈은 그러나 현실의 삶에서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유자효 시인은 1974년 KBS에 입사를 했고, 견습 6개월 과정을 거쳐 1975년 1월에 외신부의 아시아 담당으로 배치되었다. 당시 미군이 철수한 다음 월맹대공세가 펼쳐지던 베트남 사태로 인해 외신부는 북새통을 이루었고, “총각이니까 집에 안가도 되잖아?”라는 선배들의 말이 아니더라도 외신부 말뚝 보초를 서야 할 판이었다. 더구나 5시의 라디오 뉴스부터 7시 뉴스쇼, 8시 라디오 뉴스, 정오 뉴스와 2시의 뉴스쇼까지 거의 매시간 방송 뉴스를 감당해야 하는 와중에 시를 쓴다는 것이 가능했겠는가? 외신부에서 열심히 보초를 섰던 덕분에 고향인 부산방송으로 내려가 그나마 한숨 돌릴 수 있었다. 부산방송의 보도실장 이기우 선배(7회)를 만나서 동문 선배의 우대인지, 학대인지 몰라도 도(道)와 경찰국, 교육위원회 등 중요한 출입처를 맡아 동분서주했는데, 그렇게 바쁜 와중에도 짬짬이 시집을 펴냈으니 천생(天生) 시인이라고 할 수 밖에 없을성 싶다. 

*KBS 파리특파원 시절의 유 동문


KBS 외신부의 보초 역할을 할 때 말고는 바쁜 와중에도 꾸준히 시집을 내고 산문집을 냈으니 글을 쓰는 일과 방송사 퇴직 여부를 연관짓기는 어려울 듯하다. 그동안 신작 시집 17권을 포함하여 시선집 5권, 산문집 5권, 시집 소개서 2 권, 번역서 5권 등 34권의 책을 펴냈다.   KBS 유럽총국장 겸 파리특파원을 거쳐 SBS 초대 정치부장으로 부임한 후 국제부장, 해설 위원, 보도제작국장, 라디오본부장, 기획실장, 논설위원실장, 이사, 자문역 등 요직을 거쳐 퇴직한 후에도 줄곧 방송이 나 언론과 인연을 맺고 활동을 했으니 글에 관한 한 승속(僧俗)이 따로 없다는 말그대로일 것 같다. 

*sbs 시사기획 제작팀과 함께


그럼에도 언론인으로 활동하면서 시에 충실하지 못했다는 생각 때문에 나이들면서 문학에 헌신하는 열정이 더해졌다고 한다. 조정래 선생의 “황홀한 글의 감옥에 갇혀 있다.”는 말에 빗대어 “누추한 글의 감옥에 나를 밀어 넣고 있다.”는 말로 스스로를 낮추며 글에 몰두하는 상황을 조성하고있다. 매주 중앙일보에 <시조가 있는 아침>, 매월 중앙일보에 <삶의 향기>, 문예지 월간 시에 <유자효의 시집 읽기>, 불교신문 금강에 <유자효의 책 읽어주는 남자> 등을 연재하고, 국민투데이 등 인터넷 매체의 청탁과 문예지의 작품 청탁에 이르기까지 매몰차게 거절하지 못하면서 “이왕 이렇게 된 이상 제대로 글의 감옥 속으로 들어가겠 다.”라는 말로 능동적인 생각과 더불어 헌신하려 노력한다고 근황을 밝혔다. 

시인은 제대로 글의 감옥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나잇값’ 이라고도 했는데, 이번에 나온『신라행』이야말로 그 말에 딱 어울리는소산(所産)이 아닐까 싶다.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는 유자효 시인의 심성과 공동체에 대한 책임의식은 제9대 한국방송기자클럽 회장, 방송인 모임인 여의도클럽 사무처장, 시와시학회장, 제3대 지용회장, 제4대 구상선생기념사업회 회장 등 봉사 직분을 맡았거나 꾸준히 맡고 있는데서도 엿볼 수 있다. 유자효 동문에게 주어진 현대시조문학상, 후광 문학상, 편운문학상, 정지용문학상, 유심작품상, 한국문학상, 현대불교문학상, 만해 한용운문학상, 시와시학상 본상, 공초문학상, 세계전통시인협회 특별공로상 등은 평생 시를 쓰겠다는 각오와 글의 감옥 속으로 들어가 나잇값을 하겠다는 의지로 일관해온 시업(詩業)에 대한 성원과 찬사일 터이다. 


정리_이재욱(27회·청조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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