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더풀! 제2의 인생_ 이호성 동문(22회) : 種豆南山下(남산 밑에 콩을 심다)

관리자
2021-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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種豆南山下(남산 밑에 콩을 심다)  

이호성(22회, 이북5도 통일미술대전 초대작가)

 

 함경남도 안변군 명예군수, 민주평통 자문위원, 흥남철수작전기념사업회 상임이사,영천이씨 대종회 부회장, 함경남도 예술인협회 회장, 이북5도 통일미술대전 초대작가, 함경남도 행정자문위원.... 이상은 이호성 동문이 제2의 인생을 살면서 이어오고 있는 직함이다. 인터뷰를 위해 여의도 동창회 사무실을 방문한 이 동문은 칠순을 훌쩍 지났지만 여전히 오십대 같은 느낌이다. 강단있는 체구, 피부에는 윤기가 흐르고...... 외모만 봐도 원더풀 인생 2막을 한껏 즐기고 있다는 것이 여실히 증명된다.

 *제10회 통일미술대전 대상 수상 후 작품 앞에서 


국비로 온몸을 도배했던 인생 제 1막

 

이 동문은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부모님 고향은 원산 바로 아래에 있는 안변이라고 했다. , 초등학교 교편을 잡고 있던 부친이 부산으로 피난을 오다 보니 이 동문도 당연히 부산에서 성장하게 되었다. 당시에는 교사 기근 현상으로 부친이 부산과 경남에 있는 학교로 빈번하게 인사이동이 되어 이동문은 김해, 송정, 부산 등지에서 초등학교만 4군데를 다녔다고 한다.

동래중학을 졸업하고 부산고에 입학한 이 동문은 처음엔 의대를 지망해 의대반에서 공부를 하다가 3학년 때 집안 사정으로 의대를 포기하게 되었다. 졸업 후 일반대학에 1년을 다니다 뜻한 바 있어 육군사관학교 30기로 입교했는데, 학교에 가보니 이미 부산고 동기 6명이 1년 선배로 재학 중이어서 적응하기가 한층 쉬웠다고 한다. 육사에서 영어를 전공하고 임관한 후 10년 동안 야전군으로 있다가 슬슬 꾀를 부리게 되었다. 고된 야전 생활을 청산하고 싶었던 것이다. 궁리 끝에 연세대 대학원 석사과정(사범대 교육심리학)에 진학하게 되었는데 이 때가 그의 인생에 큰 전환점이 되었다. 석사 취득 후, 야전 생활을 접고 육군3사관학교에 교수로 임용되어 정년 퇴직을 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이 동문은 24년간 3사관학교에서 교수생활을 하면서 국가의 혜택을 크게 입었다고 했다. 국비로 영국 에버딘대학에서 박사과정도 밟았고, 미국 플로리다주립대에서는 방문교수를 하며 해외 경험도 많이 하게 되었다. 영국 유학시에는 스코틀랜드에서 자녀 교육을 시키다 보니 두 딸들이 외국어에 친숙하게 되었다고 한다. 덕분에 장녀는 외대 통역대학원을 나와 지금은 외교부 장관실에서 근무하고 있고, 차녀는 이 동문의 어릴 적 꿈이었던 의사가 되었다. 이 동문은 “인생 1막을 돌이켜 보니 학업, 직장생활, 자녀 교육 등 몸 빼고는 거의 모든 것을 국가로부터 혜택을 받았다”고 웃으며 말했다.

 *두 딸의 응원을 받으며 조선일보 춘천 마라톤 출전한 이호성 동문 


시니어 클럽 가입으로 인생 제2막을 시작

 

이 동문은 퇴직하고 나서는 일체 강연 활동을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어학(영어)을 기반으로 봉사 활동 꺼리를 찾다가 통/번역 봉사를 하며, 실버넷뉴스의 국제부장과 편집부국장을 지냈다. 강남시니어클럽에 가입해 13년간 100여쌍의 주례를 서는 등 봉사활동도 자주 했다.

봉사활동을 하는 틈틈이 이 동문은 체력 단련과 취미 생활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자전거 타기, 등산, 마라톤, 서예, 합창 등이 이 동문의 인생 2막을 지켜주는 튼튼한 베이스가 되었다. 이 동문은 체력단련을 위해 부인과 함께 자전거를 타게 되었는데 한수 이남 4대강 종주도 하며 장거리를 몇 년간 열심히 다녔다고 한다. 2년간 백두대간 종주, 백두산 등정 등 등산 이력도 예사롭지 않다. 마라톤 또한 풀코스 완주만 15회, 100km 울트라 마라톤 완주 등의 경험을 가지고 있다.

 *백두대간 종주를 마친 후 기념 촬영

 

 서예 강좌 출신이 초대작가가 되다

 

이 동문은 취미 생활에도 열심이다. 서예는 이 동문의 인생 2막에 특별한 의미가 있다. 함경남도예술인협회 회장과 초대작가까지 되었으니 말이다. “골프를 잘하기 위한 마인드 컨트롤이 필요해 서예를 가까이하게 되었다”는 이 동문의 서예 입문 동기가 특이하다. 이 동문은 서울시립도서관에 개설된 서예강좌를 수강하면서 쌓은 실력으로 이북5도청 연말공모전에 도연명의 한시에 나온 구절인 ‘種豆南山下(남산 밑에 콩을 심다)’딱 다섯자를 써서 첫 작품으로 출품했다고 했다. 이북5도 통일미술대전은 매년 개최되는데 5회 대회 때 금상 수상을 거쳐, 10회 대회에서는 대상을 수상했고, 2018년에는 화백 소리를 듣는 초대작가로 등단하게 되었다. 이 모두가 남산 밑에 콩을 심은 결과이다.

*이호성 동문의 서예 작품 


서예가 계기가 되어 이 동문은 김흥수 화백, 박득순, 박연도 화백 등이 활동하며 41년의 역사를 가진 함경남도예술인협회에서 7년간 총무를 지낸 후 이후로 계속 회장을 맡아 왔다. 이 협회는 그동안은 친목 단체 수준에 머무르다 올해 3월 사단법인으로 정식 인가를 받았다. 사단법인이 되면서 이 동문은 회장 자리에서 물러나 더 열심히 일할 수 있도록 얼마 전 후배에게 이사장 자리를 물려주었다고 한다.

이 동문은 성악 공부와 노래 부르길 좋아해 2011년부터 동문 모임인 아스라이합창단 활동을 하고 있으며, 2015년부터는 부부 혼성으로 구성된 화랑합창단에서도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중국 여행을 여러 차례 다녀오면서 중국어로 노래하듯 시 음송하는 것이 부러워 중국어 공부를 시작한 이 동문은 금년 3월에 방송통신대학 중문학과 3학년으로 편입해 만학을 이어가고 있다.

 

 남은 여생은 고향찾기와 뿌리 찾기 일에 매진

 

이 동문의 본관은 경북 영천이다. 아이러니하게도 3사관학교에서 근무하는 바람에 영천에서만 23년을 살았으니 이 동문에게 영천은 고래 힘줄 만큼이나 질긴 인연이다. 이 동문은 서초동에 위치한 영천이씨대종회에서 2013년부터 상근 사무총장을 지내다 작년부터는 비상근으로 다시 대종회 일을 보고 있으며 앞으로 젊은 문중들이 족보를 쉽게 접할 수 있도록 디지털화를 추진 중이다.

함경남도 도지사를 예방한 함남예술인협회 임원진(맨 좌측이 이 동문) 


현재 대한민국에 거주하고 있는 실향민들은 대략 900만명이 넘고 이중 함경남도 도민은 190만 명 정도라고 한다. 이 동문은 신설동에 있는 함경남도 안변군 향우회도 자주 찾는다. 우연히 이북5도청을 방문했다가 덜미가 잡혀 서곡면 면장을 3년, 그 후로 안변군 군수를 3년 하면서 군민들과도 스스럼없이 친해졌다. 이제 남은 건 함경남도 도백이 되는 것이다.

 

취재_ 이재훈(32회, 청조인 편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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