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가 간다_화학산업의 길을 묻다 : 석유화학 콤플렉스는 거대한 항공모함 선단

관리자
2021-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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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화학 콤플렉스는 거대한 항공모함 선단 

멘토 : 정범식(20회, 前 호남석유화학 사장·한국석유화학공업협회 회장) 

멘티 : 이은수(69회, 중앙대학교 화학신소재공학부 재학)


정범식(20회) 선배님과의 만남은 종로에 위치한 ‘한국석유화학공업협회’사무실 에서 이뤄졌다. 퇴임하신 지 몇 년이 흘렀다는데도 사무실 입구 모니터에 띄워져 있는 환영 문구, 꽃다발, 방문 기념 선물, 커피가 준비된 회의실 등 등.. 깍듯한 대접이 송구스러울 정도였다. 석유화학 분야에서 선배님의 위상이 느껴졌다. 

앞으로 내가 종사할 대한민국 화학산업의 주역을 담당해 오신 분과 이야기해볼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설레었고, 정 선배님의 상세하고 편안한 설명은 큰아버지뻘 되는 대선배님과의 나이차를 잊게 만들었다. 화학공학을 전공하는 내게 우리나라 화학산업의 한 획을 그으신 선배님과의 인터뷰는 내가 어떤 미래를 그려나가야 할 지를 깨닫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기억에 남는 학창시절 에피소드 

고등학생인 나는 정말 평범하고 조용한 학생이었다. 그 당시 천방지축인 우리들을 매로 다스리기로 유명했던 선생님께도 맞은 기억이 없을 정도였다. 집안 형편이 좋지않아 교과서와 학교에서 줬던 프린트물로만 공부를 했었다. 동창회 장학금을 받아서 생활했었고 외할머니댁과 친구들 집을 오가며 생활했다. 대학교에 합격한 후, 첫 해 등록금은 고향에 있는 논 한 마지기를 팔아 해결했다. 그 이후에는 아르바이트를 해서 스스로 학비를 댔다. 어려운 생활 형편이었지만 꿈이 있어 행복했던 시절이다. 


화공과를 선택한 이유 

물리와 수학 공부를 좋아해서 한때는 물리학자를 꿈꿨다. 당시 일본에서 두 번째 노벨상 수상자가 나왔다. 동양인 최초의 노벨물리학상 수상자는 그 유명한 유카와 히데키 박사였는데, 연거푸 두 명이나 수상자가 나온 것이다. 실험 물리는 돈이 많은 선진국에서나 할 수 있지만, 이론 물리는 우리나라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을 했다. 그래서 이론 물리학과를 가려고 했지만, 현실적인 이유로 당시 가장 취업이 잘 된다는 화공과에 진학하게 되었다. 

그 당시 서울대학교 화공과는 인기가 많아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가장 선호하던 학과였다. 당시에는 우리나라가 중공업 장려정책으로 에너지, 비료, 화학, 섬유 산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되면서 화공과의 인기가 좋은 시절이었다. 공부 좀 한다는 자칭 수재들도 일단 화공과로 진학하였다가 다른 길을 찾아 가기도 했다. 서울공대 화공과는 그런 곳이었다. 

하지만 나는 부산고 나온 걸 더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서울대 화공과보다 부산고등학교에 더 애착을 갖고 있다. 나는 고교시절 동창회 장학금으로 학교를 다닌 사람이다. ‘그 때 받았던 것보다 100배는 더 기여하고 싶다’는 생각을 항상 하고 있다. 그래서 동문 선후배들이나 동창회에는 더 잘 하려고 노력한다. 


화학산업의 현황과 향후 전망 

현재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기후변화의 대응을 위한 온실가스 감축’은 마치 화학산업의 문제인 것처럼 인식되고 있지만 사실 이는 전 산업에 영향을 미치는 일이다. 세계적인 탈탄소 추진으로 화학산업이 위기를 맞는 게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 좋은 기회도 될 수 있다. 신재생 에너지, 태양광 산업, 풍력 발전, 에너지 저장장치, 2차전지 등 신규 분야로의 발전을 꾀할 수 있는 시기다. 

화학산업은 기초소재산업으로 현대문명의 근간이 되는 산업이며, 소재의 기능은 없어지지 않기 때문에 언제나 필요한 기초 산업이다. 2018년 기준 국내 석유화학 분야의 연매출은 103조, 화학산업의 전체 매출은 446조이다. 우리나라 제조업의 28%에 달하는 큰 시장이다. 석유화학 산업 규모의 지표인 에틸렌 생산량은 세계 4위로 일본, 독일을 능가한다. 

특히 석유화학 산업은 대규모 장치 산업으로 다수의 공장이 연결된 콤플렉스형 산업이기 때문에 많은 기회가 있다. 기초 소재의 합성 및 제조, 기능성·복합 신소재 개발, 바이오 생명공학, 신재생에너지와 에너지 저장, 안전·환경 보호, 화학공학 기술 등 산업 전반에 걸쳐 다양한 진로를 택할 수 있다. 특히 화학공학은 종합적이고 전반적인 시야를 기르는 데 좋은 분야로 종합 판단능력을 배양한다면 다른 엔지니어들에 비해 경영진이 되기에 좀 더 용이하다. 뿐만 아니라 제품 개발, R&D 등 다양한 직무를 맡을 수도 있다. 화학산업은 현대 문명과 함께 지속적으 로 발전한다. 특히 석유화학 콤플렉스는 여러가지가 체인으로 묶여져 있는, 마치 거대한 항공모함 선단과 유사하다. 그 만큼 큰 꿈을 펼칠 수 있는 좋은 장이라고 할 수 있다. 


공대 출신 경영자의 장점과 단점 

나는 단점보다 장점이 훨씬 많다고 생각한다. 엔지니어 출신이기 때문에 제품이나 기술에 대한 이해도가 훨씬 높다. 생산기술은 회사 활동의 근간이 되는 것이기에 신규 사업의 발굴, 생산관리, 유통, A/S 등 회사의 기본 활동을 이해하고 추진하는데 좋다. 다만 경리나 노사 분야에 조금 취약할 수 있다. 회계 같은 경우에는 전문가에게 맡기면 되지만 기본적인 관리회계 내용을 이해할 수 있는 지식은 갖추는 게 필요하다. 노사문제는 소통을 더 열심히 하고 대화를 많이 하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좋아하는 것을 찾아 매진하는 것이 중요 

우리 세대는 국민소득이 100불 이하였지만 지금은 3만불이나 된다. 그만큼 기성세대는 격랑 속에서 살았고 그 과정에서 상처 한두 개씩은 없을 수가 없었다. 내가 아니라 국가와 산업을 먼저 생각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나보다는 국가와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재가 되는 것이 더 중요했다. 하지만 지금 세대는 그렇지 않다. 사회가 바뀌었고 국가와 사회 보다 내가 우선시 될 수 있는 여건이 되었다. 

어제 일본 스모 경기를 봤는데 우승한 사람이 몽골 출신 사람 ‘테루노 후지’이다. 그 선수는 몽골에서 고등학생 때 수학을 정말 잘하는 학생이었지만, 일본으로 와서 스모 선수로 인생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몽골 사회에서는 수학자를 수용할 일자리가 제한적이라 일본으로 건너오게 되었고, 전혀 다른 분야인 스모 선수가 되어 오히려 대성공을 하게 되었다. 

옛날 같았다면 공부 잘하는 사람은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적자원으로 기여해야 했겠지만 지금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사회가 발전하지 못했을 때는 사회가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되어야 했지만, 발전한 사회에서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 되는 것이다. 지금의 우리나라는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는 사회다. 내가 새로운 세계와 새로운 기준을 만들어 가야 한다. 자신을 규격화 하지 말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 매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정리_조철제(44회·청조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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