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가 간다] 열심히 사는 모든 사람이 인생의 스승

관리자
2022-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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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사는 모든 사람이 인생의 스승

멘토 김수웅 (35회, 서울대학병원 비뇨의학과 교수 / 교육인재개발실장) 

멘티 곽상민 (73회,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재학)  


작년에 이어 올해도 청조장학생으로 선발되었다는 기쁜 소식이 있고 얼마 후, 『청조인』<후배가 간다> 코너의 초대를 받았다. 의예과를 마치고 진급해 의학과의 바쁜 과정을 따라가기에 급급한 상황이라 부담스럽기 했지만, 동창회에 대한 감사한 마음과 현직 의사 선배님을 뵐 수 있겠다는 생각에 흔쾌히 초대에 응했다. 

아무리 부산고가 명문고라고는 하지만 이렇게 많은 의사 선배님들이 계신 줄은 몰랐다. 코디를 맡은 조철제 선배님이 수많은 개업 의사와 아산병원, 강북삼성병원 등에 근무하는 여러 선배님들을 인터뷰 대상으로 말씀해 주셨지만, 수업 일정 상 가까운 곳으로 부탁드려 같은 서울대학병원에 계시는 김수웅 선배님을 뵙게 되었다. 

오후 수업을 마치고 늦은 시간 서울대학병원을 상징하는 대한의원 건물에서 만난 선배님은 “의대에 후배가 안 들어 온 지 정말 오래된 것 같다”하시며 반갑게 맞아 주셨다.



선배님의 학창시절은 어떠셨나요? 

우리는 평준화 이후 5년차에 부산고에 진학했다. 선생님들 중 1/3 정도는 예전 선발 집단을 가르쳤던 선생님이었다. 그런 선생님들은 평준화 학생들을 공부 못하는 놈들이라고 낮잡아 보는 경향이 다소 있었다. 복장이나 두발 단속도 매우 엄했고 학생들을 모질게 다스려 문제 일으키지 않고 좋은 대학에 많이 입학시키려는 노력이 보편적이었던 시절이었다. 3년 내내 반장을 했는데 억울하게 선생님들에게 맞았던 적도 많았다.  

엄격한 고등학교 시절을 보내고 진학한 대학은 ‘술과 춤과 연애’와 '억압과 시위와 이념’이 혼재된 곳이었다. 나는 어머니 표현처럼 고삐 풀린 망아지 같이 미친 듯이 노는 부류였다. 심지어 학사경고도 한 번 받았다. 본과에도 겨우 진급했는데 본과 2학년 때부터 임상적인 내용을 배우면서 흥미가 생기기 시작했고, 그렇게 성적이 상승곡선을 그리면서 서울대학교병원에서 전공의를 거쳐 교수까지 할 수 있었다.


훌륭한 의사가 되려면 어떤 능력과 자질을 갖춰야 할까요? 

의사가 되면, 인생은 긍정적으로 환자 문제는 비관적으로 봐야 한다. 항상 최악의 상황을 먼저 생각해야 하는 것이 의사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환자에게 뭔가 찜찜한 부분이 있다면 낙관론을 버리고 의심하며 다음 액션을 준비해야 한다. 오늘 내일, 하루 하루, 이번 환자 다음 환자, 이번 케이스, 다음 케이스 등 일상의 작은 것들이라도 절대 소홀하지 않고, 소중하게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렇게 누적된 노력이 좋은 의사를 만드는 것이다. 

의사가 되는 일은 마라톤보다는 허들경기 같은 느낌이다. 하나씩 넘어가는 과정이다. 인턴, 전공의 등 과정별로 다른 평가를 받는다. 계속해서 새로운 기회를 얻을 수 있는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학생 때 공부를 잘했어도 전공의 때 못하면 ‘공부만 잘하는 놈이구나’하고, 전공의 때 못해도 전임의 때 잘하면 ‘철 들었구나’하고, 전임의 때 못해도 교수 때 잘하면 ‘대기만성형이구나’ 이렇게 생각한다. 

외과의사는 소위 말해 문무를 겸비한 사람이 되면 좋겠다. 논문도 잘 쓰고 수술도 잘하면 가장 좋다. 사람의 습성이 자기가 잘하는 것만 자꾸 하게 되는데, ‘잘하는 것을 더 잘하도록 하는 것’도 좋지만, 의사는 일단 ‘잘 못하는 일이 없도록’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항상 일관된 태도를 지키고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나만 보고 있는 환자나 후배 의사들을 위해서라도 의연한 모습을 견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의사 생활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 길을 잃어버리기 쉽다. 의사 일이 힘들다 보니까 어느 순간 권위적이고 자만하게 되고, 편하고 대접받고 힘있는 자리를 찾아 기웃거리는 사람이 되곤 한다. 의사로서, 교수로서 자신의 길을 잃어버리면 안된다.



의대 교수 생활은 어떤가요?  교수가 되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나는 사실 레지던트를 할 때만 해도 교수하겠다는 생각은 별로 없었다. 가족들이 모두 부산에 살기도 하고 개업의로 일하시던 장인께서 ‘부산에 내려와 개업하는 것도 생각해 보라’고 하셔서 그러려고 했다. 그런데 전공의를 마치고 공중 보건의를 할 때 개인적으로 무기력하고 힘든 시간을 많이 보내서인지 ‘나다운 일을 한번 해보자’라는 생각에 전임의를 시작했다.

당시 유행했던 분자생물학 관련 연구를 했는데 참 재미가 있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대단한 연구도 아니고 방법론을 정착시키는데 불과한 연구였지만 흥미를 가지고 열심히 했고, 2년차에는 무급으로 계속하게 됐다. 이미 두 아들의 아버지로서 제대로 된 월급을 갖다 주지 못하는 비참한 생활이었지만, 아내가 ‘하고 싶으면 한 번 해보라’고 응원해 줘서 견딜 수가 있었다. 자리가 하나 나서 겨우 교수가 되었는 데, 부모님이 모두 교사라서 그런지 원칙을 지키고 제자들을 가르치는 삶이 좋았다. 전임의 시절부터 6시까지 병원에 출근해 10시가 넘어서 퇴근하는 일과를 계속 유지했다. 

요즘은 나이가 들어 7시까지 출근하고 저녁 8시가 넘으면 퇴근한다. 주중 5일 중 3.5일은 외래나 수술 등 환자 진료에 할애하고 나머지 시간에 서울대학교병원 교육인재개발실장으로서 관련 업무를 본다. 의사로서의 일, 병원에서의 일, 각종 학회 임원으로서의 일, 직원들도 챙겨야 하고 시간이 부족할 수 밖에 없다. 가족이나 친구들과 보낼 수 있는 물리적인 시간이 부족해지고 관계가 소홀해 질 수 있으니 더욱 신경 써서 노력해야만 한다. 바쁜 와중에도 건강은 스스로 지켜야 하니 시간을 쪼개어 지혜롭게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교수가 되기 위해 노력을 한 것이 아니라 열심히 하다 보니 운이 좋아서 교수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교수가 되는 것은 실력도 중요하겠지만 모든 인사가 그러하듯이 ‘운칠기삼’이라고 생각한다. 평소 열심히 자기의 실력과 업적을 쌓아두고 있어야 주어진 기회를 잡을 수 있다. 인사에 있어서 이번에 한 번 잘 안됐다고 절대 실망하면 안된다. 다음에는 더 좋은 자리에 갈 수도 있다. 최선을 다하면서 기회가 오기를 기다려야 한다. 그러니까 좋아하는 일을 해야 오래 할 수 있다.

내가 교수를 뽑을 때 주의 깊게 보는 게 있다. 첫 번째는 ‘이 사람이 이 학문에 대해 진짜 관심이 있고 진심인 건지, 아니면 교수 가 되기 위해 억지로 성과를 보이고 있는 건지’하는 것이다. 얄팍한 재주 보다는 노력하는 자세와 학문적 호기심이 훨씬 더 중요하다. 무슨 일이든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일을 선택해서 그 일에 진심을 다해야 한다. 

두 번째는 타인을 존중하는 사람인지를 본다. 위의 교수님들에게는 잘하지만 주니어나 간호사들을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 동료와 아랫사람들을 존중하는지 안 하는지를 보면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가 있는 사람인지를 판단 할 수 있다. 기본적인 실력만 있으면 반복하다 보면 발전하고 성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오히려 다른 사람에게 예의를 갖추고 존중하는 마음이 더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두 아들에게 하는 말을 후배들에게도 해주고 싶다. “내가 사는 것은 여러 삶의 한 타입일 뿐”이라는 거다. 우리 삶을 사는 여러 사람들을 보면서 항상 배우고 노력해야 한다. 열심히 사는 모든사람이 인생의 스승이다. 


정리_조철제 (44회·청조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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