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조초대석/ ‘디지로그미술’로 NFT 미술시장에 출사표

관리자
2022-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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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로그미술’로 NFT 미술시장에 출사표

오진국 오즈갤러리 대표작가(22회)


요즘 IT업계에서 메타버스(metaverse)와 NFT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메타버스는사회, 경제, 문화활동이 이뤄지는 3차원 가상세계를 말한다. NFT는 설명이 쉽지 않다. NFT는 Non Fungible Token의 약자다. 우리말로는 ‘대체 불가능한 토큰’이다. NFT는 디지털 파일의 소 유 기록과 거래 기록을 블록 체인에 저장해 ‘디지털 파일의 자산화를 지원’하는 기술인데, 무한복사가 가능한 디지털 파일을 지구상에 단 1개만 존재하는 원본으로 만들어준다. 그래서 NFT는 디지털 등기부 등본, 디지털 인증서, 디지털 한정판으로도 불린다. 


국내 NFT 미술 시장 선도 

단 1개만 존재하는 희소성을 갖춘 그 ‘무엇’이 예술 작품이고 작품성도 높다면 그 가치는 천정부지로 뛰기 마련이다. 최근 NFT 시장에서 빚어지고 있는 현상이다. 2021년 3월 외국의 한 NFT 작품이 디지털 파일 한 개로 무려 780억 원에 팔렸다. NFT 시장도 수십억 달러 규모로 커졌다. 사진과 미술품 등 다양한 형태의 NFT 작품이 등장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돈이 많이 풀린 영향이 없지 않지만 시장이 성장하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국내에서도 NFT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시장의 관심과 더불어 미술계에서 NFT 시장 진출이 잇따랐다. 오진국 동문(22회)은 국내 NFT 미술계를 선도하는 작가다. 2021년 8월 벌써 NFT 작품 전시회를 개최했을 정도인데, NFT 개인 전시회는 국내 최초다. 그만큼 ‘트렌드’를 앞서가고 있다는 것 이다. 

오 동문은 최근 글로벌 NFT 기업으로부터 세계적인 영화배우 안젤리나 졸리를 소재로 한 작품을 의뢰받아 제작했다. 일러스트 풍의 이 작품은 안젤리나 졸리의 사진과 동영상 천 여점을 스크랩해 그녀의 삶과 영광, 굴곡 등을 함축적으로 표현했다. 우리에게 친숙한 세계적인 영화배우를 소재로 한 작품이 만들어졌다는 소식에 관련 업계의 관심이 높은데 그녀의 생일에 맞춰 기증하는 형식으로 전달된다. 이 작품은 NFT가 적용돼 2022년 4월 이후 글로벌 거래소에서 판매될 계획이다. 오 동문은 이번 작업을 계기로 NFT 글로벌 기업과 함께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과 영화배우 톰 크루즈, 축구선수 데이비드 베컴, 호날두, 타이거 우즈 등을 소재로 한 NFT 작품 제작에 나서면서 글로벌 NFT 미술품시장에 본격 진출한다. 

오 동문은“희소성이 강조되는 NFT 미술품 시장에서도 결국 작가의 인지도와 작품성이 중요한 요소로 작용할 것”이라고 전제한 뒤 “시대가 변하고 트렌드가 대세라고 해도 결국 예술은 작품성으로 말한다”며 “지금의 NFT 시장보다 몇 단계는 더 업그레이드 되어야 한다”며 오 동문 자신이 NFT 시장 중 디지털아트의 예술성을 이끌어가겠다는 강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51세에 화단으로 복귀해 디지로그 미술 개척 

오 동문의 자신감은 20년 넘게 ‘디지로그 미술’에 천착해 온 때문이다. 캔버스와 물감 같은 아날로그 도구 대신 컴퓨터와 전자펜 등 디지털 도구를 이용해 그림을 그려 출력한 뒤 그림 위에 유화로 덧칠하는 방식으로 작품을 완성하는 게 ‘디지로그 미술’이다. 차갑고 날카로운 '디지털 문화’와 느리지만 휴머니즘이 녹아있는 훈훈한 ‘아날로그 문화’를 아우르는게 디지로그 미술의 특징으로 꼽힌다. 

디지로그 미술의 장점은 크기를 비교적 자유롭게 변화시킬 수 있는 ‘변형성’과 파일 형태로 저장이 가능한 ‘저장성’ 등을 꼽을 수 있다. 특히 대형 작품에서 이런 장점이 돋보이는 데, 작품이 전시될 공간에 맞춰 작품의 크기를 키우거나 줄이는 게 가능하다.

고교 시절 오 동문은 미술 천재로 불렸다. 고교 재학 시절 열린 전국실기대회 13개 중에서 무려 11개 대회에서 최고상을 싹쓸이 할 정도로 사실상 고교 미술 대회를 석권했다. 그 탄탄한 기초실력으로 서울대 미대를 지원했고, 수석 합격에 해당하는 점수를 받았지만 마지막 관문인 신체검사에서(당시엔 미대도 신체검사를 실시했다.) ‘적록색약’(일제시대의 산물로 그림 그리는 데 전혀 지장이 없고 이 제도는 7 년 후에 사멸되었다)인 것이 밝혀져 최종 불합격 처리되었다. 

결국 화가의 길을 포기한 그는 원하지 않던 길을 걸었 다. 30년 다른 길을 걷던 오 동문은 대한민국이 겨우 IMF 경제위기 충격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1998년 다시 도전을 선택했다. 그의 그림 실력을 기억하고 있던 많은 선후배, 동기들은 “마치 연어가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오듯이 본래 자리로 돌아왔다”며 축하의 말 을 건넸다.  


이어령 박사도 인정한 디지털아트 선구자 

51세에 다시 시작한 그림. 그러나 현실은 냉엄하고 고통스러웠다. 그것이 소위 기득권의 반발이었다. 기존 미술계는 그에게 기회를 허락하지 않았다. 늦은 도전을 환영했던 미술계 인사들은 말과는 달리 속으론 냉담했다. “하던 일이나 계속 할 것이지 여기에 왜 기웃거리냐”는 반응까지 겪었어야 했다. 고민 끝에 다른 길을 선택했다. 디지털 미술로 방향을 전환한 것이다. 그때부터 디지털과 컴퓨터 공부를 시작했다. 포토샵, 일러스트, html, 플래시, 드림위버, 인디자인 등 독학으로 디지털 공부를 차곡차곡 해 나갔다. 

디지털아트에 매진한 지 10년 만에 세상이 그의 노력을 인정했다. 디지털아트 부문이 신설된 2009년 30회 현대미술대전에서 오 동문은 ‘복공판 위의 사람들’이라는 작품으로 전체 장르를 통틀어 최고의 영예인 ‘현대미술대상’을 당당히 수상했다. 같은 해인 2009년 올해의 작가상(미술과 비평)을 받았고, 2010년 올해의 예술가상(서울특별시)을 수상하는 등 수 십개의 굵직한 수상이줄줄이 이어졌다. 잇단 수상과는 달리 디지털아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쉽게 넘어설 수 있는 벽은 아니었다. 그림은 컴퓨터가 아니라 붓과 손으로 그리는 것이라는 시각이 여전했다. 뛰어난 작품성에도 불구하고 시장에서 그의 작품은 제대로 된 평가를,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다. 다시 시련이 찾아온 것이다. 

그때 이어령 박사를 만났다. ‘디지로그’단어를 만든 이 박사는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접목해보라고 조언했다. 지금의 디지로그 미술이 탄생한 계기가 바로 그 순간이다. 그 후 21년 넘게 디지로그 미술에 전념해온 오 동문은 무 려 5,400여 점의 작품을 완성했다. 작가만의 고집과 무한한 노력이 겹겹이 쌓인 결과물이다. 2006년 ‘디지로그 시대의 개막’을 선언했던 이어령 박사는 디지로그 미술 창작에 전념해온 오 동문을 이 시대에 보기 드문 선구자라고 칭했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2021년에는 한국미술진흥원의 한국 대표작가 40인에 선정되었고 2022년 북경 동계올림픽 베이징비엔날레 한국관에 30인작가 선정(한국예총 주관)에 발굴되었다. 한국 디지털아트의 개척자에서 한국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로 우뚝 선 것이다.


작품 렌탈 통해 대중과 만난다 

오동문이 NFT 미술과 함께 관심을 기울이는 분야는 미술품 렌탈이다. 미술 대중화에 기여하는 한편 꾸준한 고정수입을 통해 더욱 더 창의적인 창작을 위한 작업이다. 자신의 화랑 ‘오즈갤러리’에서 저렴한 비용에 작품을 대여하는 사업을 진행 중이다. 현재 충북 진천군에 있는 국가대표 선수촌 전관에 오 동문의 작품 340점이 전시되고 있고, 경기도 가평군 청심빌리지와 국제병원에도 80여 점을, 지방자치 단체나 국영기업체 등에 렌탈하는 등 많은 그의 작품들이 세상과, 대중과 만나고 있다. 

취재_김개형 | 40회·청조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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