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살맛 나게 하는 테니스 동호회

관리자
2021-08-09
조회수 608

청테모_ 세상 살맛 나게 하는 테니스 동호회 


내가 테니스를 처음 시작한 것은 30여 년 전인 1989년이었다. 그전까지는 체력단련을 위해 주로 등산과 축구를 하였고 테니스는 그냥 좀 티를 내는 친구들이 하는 운동으로 생각하고 한걸음 떨어져 있었다. 그런데 웬걸 88올림픽 이후 나라 살림살이가 나아져서인지, 당시 김봉수, 유진선 등이 아시아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내서 그런지 갑자기 내가 있던 부서 내에서도 테니스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그래서 시작한 테니스가 남보다 강한 승부욕으로 인해 1991년 해외 연수를 갈 즈음에는 상당한 수준에 이르러 연수기간 내내 건장한 아마추어 선수급 미국인 친구들과 단식을 하면서(승률 20%) 엄청 즐겼고 이후 2002-2005년 워싱턴 주미대사관 근무 시에도 건강 유지에 크나큰 덕을 보았다.

 

테니스 레슨의 끝장 비책-‘패 죽이고 싶나’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하자면 나의 집사람도 테니스가 수준급이다 그런데 그 배경이 정말 재미있다. 시애틀 연수 당시 둘째 애 육아로 찌든 마누라의 스트레스를 해소시켜 준다고 내가 테니스를 가르쳤다. 배우는데 별로 열정을 보이지 않는 마누라를 향해 심한 소리를 하니 마누라 눈빛이 분노에 타올랐다. 그래서 내가 한 말이 "패 죽이고 싶나? 그러면 공을 내 몸에다 맞춰봐!" 이었다 (물론 상대방 몸 높이에다 공을 치는 수준이면 고수급임)

그랬더니 정말로 내 몸을 맞추려고 기를 쓰고 치는 것이었다! (옆에서 구경하고 있던 미국인 부부가 농반진반으로 너희들 부부가 맞나? 라고 마누라에게 물어 보았다고 함). 그 후 정식으로 레슨을 한 번도 받지 않았는데 남편을 맞추려는 공격적인 테니스로 인해 분당지역에서 고수급 자리매김을 했다! 동기부여야 우쨌거나 결과는 훌륭한 가르침이였다고 자부한다. 집사람에게는 다소 미안하지만!

이런 테니스 배경으로 재경 동기 테니스회장을 다년간 맡으면서 줄기차게 재경청조테니스대회에 참가했지만 우승과는 거리가 멀었고,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기량과 체력이 더욱 떨어지면서 테니스대회 우승이 없는 기수가 될 뻔했다. 그러나 간절한 마음이 하늘을 움직였는지, 동문들의 테니스 동호인들이 적어짐에 따라, 한 기수가 3복식(7복식에서 이렇게까지 내려옴)을 이루는 것이 힘들어짐에 따라 타기수와 연합해서 하는 변칙이 허용되었다. 그리하여 후배들과 합심하여 기어이 우승팀에 29회 이름을 넣고 나니, 무릎도 예전과 달리 통증이 심해졌고, 열정도 식어서 점차 코트에서 멀어져 갔다.

 

빈사의 청테모를 부활시킨 깜짝 이벤트

청조 동호회 밴드나 카톡방에서 탈퇴도 하였는데도 선배들이 다시 초청을 하는 바람에, 엉거주춤한 상태로 남아있던 차에, 반가운 소식과 함께 청조 테니스 모임을 살리는 이벤트가 열렸다. 24회 홍종화 선배님께서 MS-GTS(대양 선박용 황산화물 저감장치 제조사)의 대표이사로 취임하셨다는 것과 취임 기념으로 테니스를 사랑하는 동문들을 창원으로 초대하여 1박2일 이벤트를 개최하시겠다는 것이었다.

얼마나 실력이 대단하신지(물론 테니스 실력도 최상위 레벨) 거의 강태공급인 70살이 넘어 대표이사에 취임을 하시어 청조인의 기량을 입증하시면서, 당신께서 받은 것의 일부를 동문들에게 돌려주기 위해서 창원에서 1박2일 MT를 개최하는 것이다.

그래서 속전속결로 7월 13-14일 양일간으로 날짜를 정한 다음, 참여자를 모아보니 조재효(23회), 이주천(25회), 박경규, 신윤태, 황평(이상 27회), 한기태(28회), 박영택 부부(부산 거주, 28회), 정상화(29회), 김윤기, 석용대(35회), 정현돈(41회), 그리고 오창수(39회, 다음날 참석) 등 총 13명의 동문들이 참여 의사를 밝히었다.


 


메가리회와 함께 서로를 알아간 시간

이윽고 13일이 되어 1차 집결장소인 마산 합포구 구산면의 원전항에 있는 뱃머리횟집으로 가니, 예정 시간인 5시보다 일찍 도착한 조재효, 박경규, 신윤태, 황평 선배님들은 이미 돌장어구이 정식으로 식사를 마치고 해상펜션으로 낚시잡이 출발을 하였다.(기수가 빠르면 동작도 무지 빠른가요?) 안양에서 이주천 청테모 회장의 차로 내려온 한기태 선배와 나 그리고 나머지 후배들이 남아서 방아잎을 곁들어 상추와 깻잎으로 맛있게 장어를 먹은 다음, 후배들은 야참과 내일 아침을 위해 장을 보러 가고 우리 일행은 배를 타고 해상펜션으로 간다.

 

 


해상펜션에 오르니 벌써 황평 선배가 메가리(전갱이 새끼)를 몇 마리 잡았다고 한다. 장보러 갔던 후배들도 돌아와서 이제 본격적인 낚시가 시작된다. 조금 있으니 윤태 선배께서 은갈치를 한 마리 낚았다. 또 조금 있으니 내가 갯지렁이와 새우를 혼합하여 정성껏 미끼를 끼운 낚싯대에서 은갈치와 메가리가 동시에 잡혀 올라왔다. 와우 제법 낚시가 되는 곳이구나! 고등어와 우럭도 낚아봐야지 하고 모두들 기다리는데 메가리만 올라오고 그것이 끝이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이 부산에서 온 영택 선배가 회를 뜰 줄 알아서 구이 대신에 싱싱한 메가리 회를 실컷 먹었다.

진해만의 선선한 밤바다 바람과 함께 각자가 지나온 시절을 소개하면서 선후배를 더 알아가는 시간을 가지고 난 후, 최대 안건이었던 차기 회장으로, 작지만 강한 조재효 선배님을 만장일치로 추대했다.(회장 수락사가 압권임: 나는 한번 하면 내가 그만둘 때까지 계속한다!)

 

우여곡절 끝에 성사된 테니스 시합

다음 날 아침 후배들이 선배님들 해장하라고 정성껏 끓인 라면과 햇반으로 요기를 한 다음 드디어 메인 행사장인 창원 시립 테니스장으로 간다. 우여곡절 끝에 테니스장을 확보하였는데 여기서도 우리 청조 동문의 위력이 나타났다. 대여에 어려움이 있던 테니스장이 20회 김용수 선배님의 막내 동생인 김영호(마산고 출신) 창원시 체육회 총무국장 휘하에 있어서, 두 분께서 지원 사격을 해주시는 바람에 무난하게 확보가 되었으며, 이날 무더위에도 불구하고 즐거운 시합을 갖게 되었다.


 


시합이 격렬해서인지 아니면 더위에 몸이 녹아버려서인지 여하간 땀으로 범벅이 된 몸을 찬물로 샤워를 하고 나니, 그 순간 그처럼 큰 행복감이 없다. 점심 장소인 창원지청 옆 수정골 한우 가마솥 국밥집에서 시원한 맥주를 한잔 들이키니 행복감이 배가 된다. 점심은 훈훈한 모임 분위기답게 조재효 차기 회장님께서 답례로 지불하였다.

이제 각자 집으로 가기 위해 아쉬운 감정을 뒤로 하고 재편성된 차량으로 각자의 방향을 향해 이동한다. 나는 윤기, 용대와 함께 현돈이 차로 안성으로 출발한다. 현돈이는 몇 년 전에 안성에서 주유소를 운영하고 있는데 거기서 제일 잘 나가는 주유소로 자리매김을 했다고 한다. 그 말을 들으니 내가 뿌듯하다. 기수가 낮다 보니 항상 막내 동생 같은 애틋한 마음이 있었는데 자리를 잡았다고 하니 기쁘기가 그지없다.

1박 2일 동안 그동안 많이 녹슬었던 무릎에 제법 기름칠이 된 것 같고, 내가 멀어지려고 했던 동문들이 내 생각과는 달리 가까이에서 항상 내 곁에 있어 주었다는 것을 느꼈다. 모든 것이 피폐해진 코로나 상황에서 살맛 나게 해준 선후배 동문들에게 감사드리고, 우리 부산고 동기들도 동호회 모임을 잘 유지해나가길 기대한다. 특히 낚시 동호회 같은 직접 생활에 도움이 되는 동호회는 더더욱 좋지 않겠나?

 

글_ 정상화(29회, 재경동창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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