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옛적 야구 이야기 ①

관리자
2023-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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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옛적 야구 이야기 ① 

안희수(6회) 


내가 처음 야구를 구경한 것은 미군정 때인 1947년, 부산 공립중학교 1학년 1학기 어느 초가을 날 부산중학교와 경기중학교의 친선경기이다. 해방된 지 얼마 안된 미 군정기라 야구가 그리 알려지지 않아, 몇몇 큰 중학교에만 야구팀이 있을 정도였다. 부산(경남)에는 먼저 생긴 경남중학과 부산상업중학교 그리고 새로 생긴 부산중학교, 이렇게 세 팀밖에 없었다. 

부산상업중학교는 일제 강점기에도 조선인만 다니던 학교이고, 부산 제2중학교이던 경남중은 조선인 일본인이 반반쯤 되어 해방 직후 야구팀을 만들어 이름을 날리고 있었지만, 부산 제1중학교이던 부산중학은 교사와 학생 거의 모두가 일본인이라 해방되자 학교가 텅 비었다. 

국내 최강을 자랑하는 경남중학과 자웅을 겨루기 위해 내려온 서울의 강호 경기중학이 경남중학과 공식 경기를 하 고, 다음날 온 김에 생긴 지 얼마 안 된 부산중학과도 친선 경기를 갖게 되었다. 부산에는 또 하나의 강호 부산상중팀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신생 부산중학과의 경기를 택한 것을 보면 분명 신생팀 격려 차원이었을 것이다. 

경기중학은 첫날 치른 경남중학과의 공식경기에서 예상대로 대패했다. 부산중학생들은 경기중학 실력이 별것 아닌 것 같아 어쩌면 우리가 이길 수 있을 것도 같았다. 

다음날 아침, 부산중학교 1학년부터 6학년까지의 전교생이 동시에 교문을 나섰다. 초량역 앞에서 출발하여 구덕공 설운동장까지 가는 조그만 전차가 있기는 하지만 부산중학생 1천여 명을 모두 다 태울 수는 없다. 가장 가까운 길인 영주동 산고개를 넘어 공설운동장까지 걸어서 갈 수밖에 없다. 수많은 남학생들이 떼지어 걸어가는 행렬을 구경 나온 영주동 아주머니들이 “이렇게 아들이 많은데도 자식 없는 집이 있을까?”하면서 놀란다.

 2시쯤 경기가 시작되었다. 전교생이 부산중 응원가 “이겨라 부중 부중 부중”을 소리 높이 외쳤지만 졌다. 그것도 대 참패다. 대구 어느 중학에서 특별히 스카웃 해 온 에이스 ‘짝패이’ 피처는 볼밖에 던질 줄 모르고 스트라이크를 던졌다 하면 얻어맞는다. 사상이 붉어서가 아니라, 얼굴이 빨개서 빨갱이인 3루수 김 빨갱이 형은 알까기 전문가다. 가장 잘한다는 선수들이 이 모양이니 어떻게 이길 수 있겠나? 잽이 안 된다. 

내가 응원하기 때문에 지는 것만 같아 다시는 응원 안가기로 다짐하고, 굳건히 지켰다. 1967년 재경동창회가 생겨서야 그 저주가 풀렸다. 재경동창회를 만드는 일은 그리 쉽지 않았다. 1960년대에만 해도 서울에 올라온 부산고 출신 수가 얼마 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아직은 동창회까지 챙길 형편들이 아니었다. 1인당 GDP가 $157도 채 안될 때다. 맨손으로 상경한 부산 촌놈 생활이 그리 녹녹할 리 없다. 보다 더 큰 문제는 부산중·고 출신들이 진한 동창애를 느낄 만한 동질성을 인정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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