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을다시본다<7> : 중국 고전 에세이 / 2021년 2월호

관리자
2021-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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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고전 에세이

글 : 조현태 | 27회


중국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역사와 문화를 알아야 하고 그것은 고전에 담겨 있다. 그러나 청말 문인 양계초의 말대로 수만 권에 달하는 중국 사서와 고전을 다 읽을 수도 없고 읽을 필요도 없다. 한 북경대 역사학과 교수는『케임브리지 중국사』와 첸무(錢穆)의『국사대강 (國史大綱)』을 읽어보라고 추천했다. 최근에는 베스트셀러『이중톈 중화사(易中天中 華史)』와 외국인이 쓴『하버드 중국사』, 일본 講談社의『중국의 역사』가 중국 내에서 크게 주목받고 있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 ‘모든 역사는 현대사이다’라는 말과 같이 역사적 사실을 인위적으로 왜곡하고 미화한 부분이 많다는 것은 중국도 예외가 아니다. 후스(胡適)가 “역사는 아무에게나 화장을 맡긴 처녀(歷史是個任人打扮的小姑娘)” 라고 했듯이 사관에 따라 역사적 해석이 크게 달라진다. 

또한 최근 고고학적 발굴과 인류학, 언어학, 천문학 등이 동원되어 새롭게 진상이 드러나기도 한다. 공자와 사마천도 보지 못했던 갑골문, 청동기 금문(金文),죽간(竹簡)과 비단에 쓴 백서(帛書) 등이 대량 출토되어 고대사와 사상사를 다시 써야할지도 모른다. 중국에서는 1996년부터 하상주 단대공정(夏商周斷代工程) 이라는 이름으로 고대사 기점을 끌어올리는 학제 간 대규모 프로젝트를 추진했고, 2000년대 들어 고구려사를 왜곡하는 동북공정(東北工程)을 추진하고 있다는 것은 주지하는 바이다. 동북공정에 대해서는 한중 양국 정부 간 이른바 구두합 의로 미봉해 버렸고, 항미원조(抗美援朝)라고 부르는 6.25 중공군 참전을 정의의 전쟁이라고 한 시진핑의 역사인식에 대해 여기서는 지면상 생략하지만, 그것이 단순한 역사분쟁 이 아니라 언제든 중대한 정치문제로 비화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은 기우가 아니다. 

필자는 중국 여행시 어디를 가든 박물관을 빼놓지 않는데, 무엇보다 그 스케일에 압도되고 만다. 최근에는 중국사회과학원 내에 중국역사연구원을 신설하는 등 역사연구에 엄청난 노력을 경주하고 있어 우리가 수적으로 밀리고 있다는 점은 크게 우려할 일이다. 

또 하나 여기서 지적하고 싶은 것은 한국 상고사와 관련한 것이다. 한국 고대사 미스터리는 상당 부분 발음 때문이다. 중국에서는 유목 민족 훈(Hun)을 흉노(匈奴)라고 음역 했듯이 외래어 음역에 엉터리가 많다. 불경도 번역 안 되는 개념은 거두절미 하거나 도가 개념으로 의역 (意譯)하던가, 아예 범어(梵語)를 그대로 음역(열반, 반야)해서 의미가 변했고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숙신, 예맥, 부여, 물길, 말갈, 옥저, 여진, 만주 등의 고음(古音)이 무엇인지 밝혀내는 것이 급선무이다. 역사지리학적으로도 아직 낙랑군, 평양, 패수(浿水) 비정에 논란이 많은 상태이다. 한국 사학계에 몽골어, 만주어를 하는 학자들이 있는지 모르지만 고대사 연구에 언어학자와 음운학자들의 참여도 절실히 요청된다. 


서로 다른 해석 

중국 사서와 경전을 읽다 보면 지금까지 알고 있던 것과는 크게 다른 부분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예를 들면, 맹자(孟子)가 말만 하면 들먹이는 요순시대, 위(魏)나라 죽간(竹簡) 죽서기년(竹書紀年)에는 선양(禪讓)이라는 이름 하에 순(舜)이 요(堯)를 감금한 피비린내 나는 권력투쟁으로 기록되어 있다. 또 주문왕(周文王)을 보좌했던 강태공(姜子牙)은 70 대 노인이 아니라 30대의 염제(炎帝) 부족 수령이라는 설도 있다. 주문왕과 강태공의 고사는 황제(黃帝)부족과 염제부족 의 부족연맹을 상징한다. 

기원전 1046년 주무왕(周武王)이 상(商)나라를 멸한 목야전투(牧野之戰)에 대한 상서(尙書) 무성(武成) 편의 기록에 대해 맹자는 위작이라고 단정했다. 상나라 주왕(紂王)을 주살한 무왕이 ‘피가 뚝뚝 떨어지는 몽둥이를 들어올렸다(血流漂杵)’고 기록된 것을 보고 맹자는 “책을 믿느니 책이 없는 게 낫다(盡信書不如無書)”라고 하면서 그럴 리 없다고 부인했다. 이에 대해 양계초는 저서『중국역 사연구법』에서 주무왕의 잔포한 행위가 오히려 진상일 것이라고 보았다.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도 역사적 사실을 정확히 기록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지만 어느 정도 주관이 개입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무엇보다 청나라 건륭제 때 편찬한『사고전서(四庫全書)』는 수많은 사서를 멸실시켜 진시황의 분서갱유보다 수백배 더한 재앙이었다. 


자구(字句) 해석에서 탈피 필요 

그러나 중국 고전은 매우 난해하고 언어는 생경하다. 고대 사상가들은 일체를 논하는데 능했으나 아무도 자신의 학설을 체계화하지 않았다. 이 저술들은 모두 과다하리만큼 잡다한 진술들로 가득차 있다. 따라서 우리가 고문을 읽으려면 정확한 해석으로 간주되는 주석에 의존해야 한다. 그러나 후대 학자들의 편향적이고 교리적인 주석이 자구(字句)에만 얽매여서 본래의 뜻을 잘못 해석한 부분이 많다. 어떤 사상이던 어느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라 크고 작게 생태환경과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다. 그것은 당대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철학적 사유의 산물이다. 

우리가 그 시대에 들어가지 않고는 그 시대 사상을 정확히 이해할 수 없다. 중국사상사를 일별하면 춘추전국시대와 진한(秦漢) 통일왕조 이후로 크게 나누어진다. 중국의 춘추전국시대는 독일 철학자 칼 야스퍼스가 기원전 800년에서 기원전 200년까지 600여 년을 축심시대(The Axial Age)라고 부른 인류 문명의 사상 돌파가 일어난 시기이다. 

춘추전국시대 질서가 무너져 혼란한 시대에 일군의 지식인들이 세상을 구하겠다고 나와 이상적인 사회모델을 제시하며 각자의 주장을 펼쳤다. 그 대표적인 학파가 유가, 묵가, 도가, 법가이다. 제자백가 모두 세상을 구하겠다는 열망은 같았지만 입장과 방법이 달랐다. 

공자는 귀족의 행동규범이었던 형식적인 제도(禮)에 인(仁,상호존중)이라는 내용을 채워 넣어야 한다고 역설했고, 자신의 주장이 통하지 않음을 알면서도 그것을 내려놓지 못했다. 공자는 주유열국, 동분서주했으나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지 못하고 좌절했지만, 그의 학설은 제자들에게 전승되어 한무제때 유교가 국교로 정해진 이래 수천 년 지배 이데올로기로 군림했다. 

반면 주왕(周王)의 사관(史官)이었던 노자는 궁전의 모든 책을 섭렵하고 귀족이 하루아침에 몰락하는 것을 수없이 목도하면서 세상 이치가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을 간파했다. 유가가 어떤 이상을 내세워서 열성적으로 뛰어다닌 데 비해, 도가는 냉정히 객관적으로 관찰해보 니 세상은 이렇게 흘러가더라 하는 이치를 설파하고 군왕을 설득했다. 유가는 천지만물 중에 인간이 최고로 귀하다고 봤으나, 노자는 인간이 자연의 일부이고 미미한 존재라는 관점에서 출발한다. 노자의 무위사상과 병법은 한비자와 손자에게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전국시대 들어와 제나라 선왕(宣王)이 수도에 직하학궁(稷下學宮)을 세우고 천하의 학자들을 모두 불러모아 논쟁이 벌어졌는 데 이것이 백가쟁명이다. 순자(荀子)가 여러 번 학장을 맡았는 데 그 제자들이 법가로 전향했다. 그들은 상대를 궁지에 몰아넣기 위해서라면 자신도 인정하지 않는 논리를 순전히 술책으로 사용하는 데도 능했다. 법가의 어떤 논객은 마치 도가인양 논지를 펼치기도 했다. 


통일왕조의 근본문제는 합법성 확보 

진한(秦漢) 통일왕조가 들어선 이후 직면한 근본적 문제는 왕조의 합법성 확보와 황제에 대한 견제였다. 특히 시골 건달 유방이 돌연 황제가 되는 사건이 일어나자 그것을 어떻게 사람들에게 이해시키느냐 하는 것이 최대 문제였다. 왜 유씨가 황제가 되어야 하느냐 하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한무제 때 유가들이 내놓은 천인합일(天人合一) 사상이다. 

동중서(董仲舒)는 천인감응설(天人感應說)을 내세워 천(天)을 이용해 황제가 마음대로 하지 못하도록 압박했고, 송대에는 천리(天理)를 내세워 조정의 권세를 제약했다. 그러나 중국에서 황권(皇權)에 대한 제약은 사대부 계층의 투쟁에 의거했지 법률적 보장은 없었다. 

현재 공산당 통치하 중국은 중국문화 중 나쁜 요소는 강화되고 좋은 요소는 상실되었다. 계급투쟁과 문화대혁명을 거치면서 중국 사회에서 인정이 사라지고 사람들은 서로를 의심하여 세 사람이 있을 때는 감히 속마음을 털어놓지 못한다. 당과 정부를 비판하는 길은 완전히 봉쇄되고 모두가 어용학자로 전락해 시진핑의 눈을 끌기 위해 경쟁하는 분위기 이다. 중국은 방향을 잘못잡아 공산당 집권 이후 수십 년 반문명(反文明)의 길로 들어섰고 이를 뒤집고 정도로 들어서기는 요원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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