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가 간다] 馬行處牛亦去 천천히 가더라도 좋아하는 일을 하라.

사무국
2024-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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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가 간다] 

馬行處牛亦去 

천천히 가더라도 좋아하는 일을 하라. 


Mentor: 박재완(26회, 성균관대학교 이사장 · 前 기획재정부 장관)

Mentee: 이준석(74회 ·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재학)

겨울임을 감안하더라도 너무나도 추운 혹한의 날, 성균관대학교에서 선배님을 뵈었다. 11월 중순 인터뷰 제안을 받고도 한 달도 넘게 지난날이었다. 처음 인터뷰를 약속한 날은 11월 말, 독감이 심하게 걸려서 피치 못하게 일정 연기를 했다. 여러 가지 일로 정말 바쁘실 텐데도 사회복무요원으로 근무 중인 후배를 배려해 일정과 장소도 흔쾌히 바꿔 주시고 취재와 사진 촬영도 적극적으로 해 주셔서 정말 감사했다. 

특히, "새까만 후배이니 말씀 편하게 하시라"는 요청에도 "저는 제가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존댓말을 합니다." 하시며 인터뷰 내내 존댓말을 하시는 모습에 큰 감명을 받았다. 


Q. 선배님의 학창시절은?

고등학생 때는 야구를 너무 좋아해서 야구부 응원 부장을 했다. 중요한 대회가 있으면 선생님들이 말리더라도 결석까지 해 가며 친구들과 함께 서울 가서 응원할 정도로 좋아했다. 아직도 기억나는 건 황금사자기 결승 때, 친구들에게 모자 돌려 차비를 받아서 동대문구장까지 응원을 갔었는데, 역전패로 지고 말았다. 그때가 그 유명한“역전의 명수”라는 별명을 군산상고에게 안겨 줬던 바로 그 경기다. 요즘엔 우리 학교도 우승을 가끔 하지만, 우리 학교 다닐 때는 우승 한번 못하고 있는 형편이었다. “성적이 안 좋은 이유가 스카우트를 잘 못해서 그런 것”이라는 생각에 마산까지 가서 직접 선수들을 스카우트하기도 했다. 그 선수들중한명은 훗날 유명한 선수가 되었는데, 정의윤 선수의 아버지 정인교다. 나는 하나에 빠지면 끝을 볼 만큼 몰입하는 스타일인 것 같다.

대학 때는 유신 시절이라 8학기 중 겨우 3학기만 다녀서 학업에 충실하기 어려웠고 학교에서 배운 것도 별로 없었다. 

한때는 학생운동에도 관여해 짧지만 두 차례 옥살이도 했다. 그럼에도 경제가 고도 성장하던 때라 취업 걱정은 없었고, 과외 수요도 많아서 학창 생활이 그다지 어렵지는 않았다. 다만,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서울의 명문고 출신들은 학부 시절부터 유학 

준비를 한 친구들이 많았다. 나도 공직에 들어가서 뒤늦게 유학을 가게 되었지만, 후배들은 경제적 형편을 가리지 말고 해외 유학에 뜻을 두면 좋겠다. 정말 많은 걸 느낄 수 있다. 


Q. 공무원으로 시작해 장관까지 하시게 된 과정은?

처음엔 다른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당시 최고 직장이던 대기업 종합상사에 취업했었다. 입사 후 의무복무를 위해 동사무소에서 방위병으로 근무했다. 그때 보니 일선 공무원들이 주민들에게 너무 불친절했다. 이를테면, 연세 많은 할머니께서 손자 출생신고를 할 때 한자를 모르시면 좀 도와줘도 될 텐데, 굳이 동사무소 맞은편 대서방으로 돌려보내 서류를 다시 쓰게 했다. 나중에 보니 대서방과 공무원 사이에 암묵적인 연계가 있었다. 새마을지도자, 통장, 청소년 선도위원 등 완장 찬 사람들 상당수가 그런 횡포를 부리고 공무원과 결탁해 사익을 챙기고 있었다. "내가 공무원이 되어서 이런 문제를 바로 잡아보겠다." 생각했다. 고시를 거쳐 공직을 시작했다. 첫 발령은 대통령 직속 국가안보회의였다. 고시 성적이 합격자 250명 중 4등이라 당시 인기가 있었던 재무부에 지원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안 됐다. 국가안보회의 이후에 감사원에서 근무하고 정부가 보내주는 해외 유학을 다녀와서 조세 전공을 했기에 재무부, 재경원, 청와대 등에서 근무했다. 16년 공직 생활 중 5년 7개월은 해외 유학을 했고, 국회의원, 청와대에서 정무수석과 국정기획수석, 고용노동부와 기재부 등 장관을 2번 했다. 

고시에 합격하고 공직에 들어섰으니 '차관까지는 올라갈 수 있겠다'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유학 과정에 '적성에 맞는 학문을 계속하는 것도 좋겠다'라고 마음이 바뀌었다. 교수직이 나에게 잘 맞는 것 같았다. 그래서 일단 공직에서의 승진보다 하고 싶은 걸 먼저 해야 후회가 없겠다는 생각으로 하버드 대학원에서 박사과정까지 밟았다. 이후 공무원으로 복귀해 재무부로 옮겨서 의무 복무연한을 채웠고, 운이 좋아 성균관대학교에서 교수로 봉직할 기회까지 얻게 됐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게 교수로 열심히 일하다 보니 나중에 공직에서도 동기들보다 더 높은 자리를 맡게 됐다. 공직 승진에서 새치기한 셈이다. 지위가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눈앞의 이해득실에 집착하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을 하다 보니 결과적으로 더 나아졌다고 할까. 후배들도 어려운 결정이나 고민이 있을 때는 하고 싶은 것을 선택할 것을 권한다. 그래야 후회가 없고, 또 자기가 하고 싶은 건 열심히 하게 되니 결과도 훨씬 더 좋을 것이다. 


Q. 선배님만의 성공 비결이나 가치관이 있다면?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했던 톰 글래빈이라는 유명한 투수가 있다. 그는 최고 구속이 145km 정도로 빠른 편은 아니었으나, 퀄리티 스타트를 가장 많이 기록한 전설적인 투수다. 어떤 기자가 인터뷰에서 그 비결을 묻자 "야구에 대한 나의 열정은 구속 측정기로는 잴 수 없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그는 경기 전에 상대 타자의 습관, 타격 패턴 등을 철저히 분석하고 누구보다 열심히 연습했다고 한다. 우리 후배들도 그런 장인정신을 가졌으면 한다. 자기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해서 몰입하면 자연스럽게 길이 보이고 자긍심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오랜 기간 몰입할 수 있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잘 찾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이룰 수 있다'는 믿음으로 목표는 무조건 높이 잡는 것이 좋다. 경쟁이 치열한 고시 같은 시험에도 누군가 분명 합격자는 있다. 해외 유학도 미리 겁먹지 마라. 두려워하지 말고, 처음부터 목표를 낮추지 않았으면 좋겠다. 목표를 낮추면 저절로 그 선에 머무르게 된다.

그리고, "남 따라 장에 가는 일"은 절대 하지 마라. 다 같이 선택하면 성공할 확률이 낮아질 뿐만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일이 아니면 최선을 다하기도 어렵다. "馬行處牛亦去"라는 말이 있다. 말이 항상 앞서가는 것으로 보이지만, 어디를 가든 말이 가는 곳은 소도 갈 수 있다. 말이 가는 것보단 느리겠지만 노력한다면 결국엔 어디든 이를 수 있다. 

살다 보면 어려운 일을 겪지 않을 수 없다. 세상일은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게 현실이다. 다만, 그럴 때도 한발 한발 최선을 다하면 웬만하면 이뤄지게 되어 있다. 큰소리로 끝까지 문을 두드리면, 집주인이 아닌 옆집 사람이라도 반드시 누군가는 깨우게 될 것이다. 


Q. 후배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

우리 후배들은 일단 학업에 충실하면서, '내가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을 찾는 데 노력하면 좋겠다. 열심히 하면 성과를 거둘 수 있고, 성공 확률도 높아진다. 요즘 학생들은 개인의 능력은 뛰어나지만, 협업이나 팀 프로젝트 등의 경험이 부족하다. 출제 가능성이 높은 것만 공부하고, 내신 때문에 그런지 이기심이 강하며 협동심과 희생정신은 점점 엷어지는 것 같다. 대학 생활 중에 다양한 활동을 통해 이러한 점을 보완하면 좋겠다. 그리고 고전이나 문학 작품도 많이 읽어야 한다. 책을 읽으면서 얻는 간접경험은 남의 입장에 공감하는 마음 등을 기를 수 있다.

마지막으로 두 가지만 당부하자면 첫째, "하고 싶은 일을 하라. 그리고 그 일에 혼신의 힘을 기울여 도전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최선의 노력을 다하려면 일단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한다. 그래야, 오랜 노력의 과정이 힘들지 않다. 둘째는 "겸손해라. 그리고 누구에게나 먼저 인사하라."는 것이다. 인사는 좋은 인상을 남기고 그 영향은 평생을 좌우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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