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회 문용주] 시 쓰듯 사무사(思無邪)로 살아가면 무슨 걱정 있을까?

사무국
2024-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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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쓰듯 사무사(思無邪)로 살아가면 무슨 걱정 있을까?

문용주 (25회·시인, 참살림수련원 원장)


저마다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생각의 스펙트럼도 저마다 다르다. 

시각과 견해의 차이로 인해 사람들끼리 좋아하고 싫어하고, 웃고 울고, 싸우고 화해한다. 

그럼에도 시대의 변화와 무관하게 옳고 그름의 언쟁을 반복하고, 긍정과 부정의 다툼은 그치지 않는다. 

인류사회에서 아직도 가시지 않고 있는 수많은 갈등과 충돌, 분쟁과 전쟁도 이로 인해 생긴다고 할 수 있다. 

겉모습은 다르지만 엇비슷하게 셀 수 없이 반복해 온 역사 적사 실들이 이를 명확하게 보여주었고 지금도 그러하며 미래에도 그럴 것이다. 

이는 모두 바름을 잃었기 때문이다. 진정한 바름을 모르기 때문이다. 바름을 강조하는 것은 동서양이 마찬가지다. 불경의 수행방법 중에 팔정도(八正道)가 그러하고 유교의 오상(五常) 중에 의(義)가 그러하다. 

성경에도 ‘정의(正義) 로운 세상이 되면 평화와 안정을 누린다.’고 하며, 소크라테스는 ‘혼(魂)의 훌륭함’을 정의라고 하였다. 

현대에도 정의와 공정의 핵심인 바름은 법과 질서를 유지하고 사회를 올바르게 이끌어가는 필수 가치로 본다. 

고대 중국의 사서오경(四書五經) 중 시경(詩經)에서도 바름은 찾을 수 있다. 

공자는 논어(論語) 위정(爲政) 편에서 ‘시 삼백 편(三百篇)은 한 마디로 생각에 사특함이 없다(詩 三百, 一言而蔽之曰 思無邪)’라고 하였다. 

시경에 수록된 시 삼백 편은 모두 바른 생각으로 쓴 시라는 뜻으로 볼 수 있다. 

시에 삿됨이 없다는 말은 시 자체에만 초점을 두고 쓴 것이지 다른 의도나 목적이 개입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시의 순수성, 시인의 바른 마음이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삿됨을 혁파하면 바름이 나타난다는 파사현정(破邪顯正)도 그 궤(軌)를 같이 한다.

바른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으면 바른 사회가 된다

시는 순수한 마음으로 쓰여야 한다. 

순수한 마음이 되려면 나에게 진솔하고 남에게 솔직해야 한다. 

정직한 마음이 인간성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게 하고 시인의 순수성을 발휘하게 한다. 특별한 목적을 숨겨 진실한 의도가 변질되거나 과장 왜곡을 가미하여 언어의 유희에 그치면 시인의 순수한 마음이 왜곡되고 쓰인 시 또한 그로 인해 외면을 당하기 쉽다. 

사계절을 달리 하면서 피고 지고 자라고 단단해지는 자연 속 꽃나무의 생태에 어찌 순수성이 없을 것인가? 

셀 수 없이 많은 생명을 품은 높은 산과 깊은 계곡을 가로질러 강으로 흘러내리는 물에서 어찌 바른 자연의 섭리를 깨달을 수 없겠는가? 

자연과 같이 순수하고 담백한 시인의 마음으로 쓰는 시에 어찌 바르지 못한 생각이 개입할 것인가? 

이는 시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사람을 대할 때, 세상사를 마주칠 때, 수많은 일을 해결할 때 순수한 마음으로 대하고 바른 생각으로 일을 처리하면 관계되는 당사자는 물론 하는 일에 후유증 없이 공정하고 깔끔하게 처리되면서 모두가 흡족하게 될 것이다.

바른 마음으로 사는 사람은 주변 사람들로부터 쉽게 신뢰를 얻기에 하고자 하는 일도 더욱 잘 될 것임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몸과 마음을 바르게 하는 것을 중시하는 명상에서도 바른 생각 즉 정사(正思)는 필수이다. 

생각이 바르면 사람이 바르게 되고 가정을 바르게 할 수 있으며, 바른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으면 바른 사회가 된다는 점에서 사무사는 누 구나 마음속에 담아 온고지신(溫故知新)으로 실천할 만한 훌륭한 고전의 경구(警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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