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고야사[제12화] 깜쪽같이 속고 먹은 냉채

2025-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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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쪽같이 속고 먹은 냉채 

최경식(14회) 


왕년에 강남에서는 최고의 치과의사로 알아주던 박(朴基憲) 원장, 그리고 벌써 오년전에 도규(刀圭)에서 손을 떼었지만 아직도 미아리 사거리에서 그 명성이 자자한 외과의사 배(裵勝司) 원장, 두 친구는 고교시절부터도 아옹다옹하는 사이였지만 쟁쟁한 개업의(開業醫)로 날릴 적에도 마주치기만 하면 까닭도 없이 서로 빈정대기가 일쑤였다.

“어이구, 누우런 이똥이나 긁는 놈이 의사라꼬...”  

“사돈 남말하고 있네, 백정 매로 맨날 사람 살이나 째고 발기는 놈도 의사라꼬...” 

재작년에 큰아들한테 진료대(診療臺)를 물려준 박원장과 이미 오년 전에 둘째사위한테 집도 (執刀)를 넘기고 물러선 배원장은 칠순을 바라보는 지금까지도 그런 빈정거림은 여전해서 하다못해 폭 싹 쪼구러든 서로의 외모를 가지고도 그저 핀잔이다.

“늙은 놈이 기생오래비 매로 허연 머리터럭에 염색이 머꼬? 그것도 서너가닥 밖에 안남은 족제비 수염같은 거를 갖고.”  

“어이구, 그래도 나는 안즉 머리터럭이라는 기 있다. 칠십도 안된 놈이 고러키 홀랑 까져 갖고···. 인드라야, 그기 대갈통이가? 허연 똥궁댕이지.” 

그러면서 지금도 눈을 흘기고 침을 튀기는데 모르는 사람은 영락없이 불구대천의 앙숙으로 생각할는지 몰라도 천만에, 오십년이 넘게 그들을 지켜보아 왔던 P고교 동창들은 두 친구가 얼마나 다정한 사이인지 너무나도 잘 안다.

고교 삼년을 한 반에서, 그것도 같은 책상에서 공부했던 그들이었다. 1~2학년 때는 우연히 한 반이 되었지만 3학년 때는 부모들까지 동원해서 한반이 되지 않으면 똑같이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겠다느니, 그리고 둘을 나란히 앉혀주지 않으면 대학입시고 뭐고 공부가 되지 않는다느니, 그렇게 학교에 억지와 생떼를 부려서 한 반 한 책상의 짝꿍이 되었던 그들이었다. 고교를 졸업하고 나란히 S대를 들어갔을 때만 해도 그 어려운 관문을 뚫은 기쁨은 제쳐놓고 의대와 치대로 각자의 앞날이 갈려버린 그들의 비참한(?) 처지를 한탄하며 밤을 새워 울었다고 하는데 머잖아 한 친구가 이승을 떠나면 남은 친구는 또 얼마나 대성통곡을 할는지 동창들은 아직도 삼십대 청년처럼 팽팽한 두 친구를 두고 요즘은 모이기만 하면 그 걱정이다.

그런 두 사람이라 대학 사년을 같은 하숙집에서 공부를 했고 인턴과 레지던트 과정을 같은 병원에서 수련을 했고 군의관시절도 같은 사단에서 복무를 했는데 마나님들이 주선을 하는 통에 병원 개업만 한강을 사이에 두고 남북으로 갈렸을 뿐 사십년 전부터 강남의 우면산 기슭에 똑같은 모양의 한옥을 짓고 대문까지 똑같은 칠을 해서 나란히 붙어서 살고 있다.

뿐만 아니라 고교시절부터 지금까지 두 친구는 취미는 물론 심지어 입맛까지도 희안하게 똑같다. 두 사람 모두 골프 같은 건 어쩐지 양품(洋風) 스럽다고 싫어해서 옛날 군의관 시절에 익혔던 낚시가 아직도 유일무일한 취미인데 지금도 틈만 나면 낚싯대를 매고 나가서 하나같이 뻘귀신이 되어 돌아오곤 한다. 식성 역시 두 사람 모두 어릴 적부터 육류(肉類)는 냄새도 못맡아서 박옹이고 배옹이고 밥상은 언제나 김치를 비롯한 야채일색이다. 그중에서도 이맘 때 삼복 여름철에는 박옹이나 배옹이나 얼음을 동동 띄운 냉채를 더없이 좋아해서 끼니때마다 그게 없으면 수저를 잡지 않는데 딱 하나 다른 점이 배옹은 그저 마나님이 만들어 주는 대로 잘만 먹는데 박옹은 다른 건 몰라도 냉채 만드는 솜씨를 두고는 허구헌날 마나님한테 짜증섞인 불평을 늘어 놓는다.


“이기 머꼬? 배가집에서 맹근 거는 식초를 살짝 여갖고(넣어가지고) 오이도 그렇고 미역도 그렇고 입안에서 살살 녹던데.”  

“아이구, 우리 꺼도 오이하고 미역에다가 식초까정 모조리 옇었는데 와 그카십니꺼?” 

“글씨 냉채라 카는 거는 이런 맛이 앙이라카이!” 

그래서 박옹 마나님은 이번 여름에도 끼니때마다 배옹네에서 만든 냉채 한 그릇을 얻어서 박옹한테 갖다 바치는데 박옹 마나님은 그때마다 장독대에 올라가서 배옹네를 향해 박옹도 넉넉하게 들을 수 있도록 이렇게 고함을 지른다.

“보소, 동상(동생)! 냉채 맹근 거 있으믄 한 그릇만 주소!” 

영감님들처럼 두 마나님도 서로를 동생으로 부르며 지낸 지도 벌써 삼십년이 넘었는데 어쨌거나 그렇게 동냥을 하듯이 한 사발을 얻어 상에 올리면 박옹은 한 모금 주욱 마셔보고 그제서야 흡족한 표정으로 이러는 것이었다.

“그래, 냉채맛은 이래야 되능기라!” 

그 탓에 박옹은 이번 여름에도 배옹을 만날 때마다 또 사정없이 핀잔을 당했다.

“인드라야, 냉채라 카는 기 그 맛이 그 맛이지, 와 남의 집 음식을 그러키 축을 내노?”  

칠십평생을 두고 어떤 말싸움도 당당하게 맞서오던 박옹은 냉채 시비에서만은 몇년째 배옹한테 찍 소리도 못한다.

“미안하다. 뚝배기보다 장맛이라 카더이 제수씨가 냉채 맹그는 솜씨 하나는 괘않다카이.” 

“머라카노? 뚝배기보다 장맛? 그라이 우리 마누라가 음식 솜씨는 몰라도 얼굴은 제수씨보다 못생겼단 말이제?” 

“하모, 생긴 거야 우리 마누라가 백번 낫제.” 

시비를 지기 싫어서 그렇게 화제를 돌렸지만 박옹도 양심이 찔려서 그저께 치과의사회의 초청으로 학술강연을 다녀오는 길에 큰 결심을 하고 그날 받은 강연비를 몽땅 털어 서돈짜리 금반지 하나를 사들고 배옹집 문을 두드렸다.

“제수씨, 이번 여름에도 잔뜩 냉채를 얻어묵고 내 미안시러버서 오늘 이거하나 장만했는데 받아 주이소.” 

“아이구. 친구간에 그런 거를 머 미안시럽고 어짜고 그카십니꺼?” 

“천만에요. 베룩도 낯짝이 있지 하루 이틀도 앙이고 끼니때마다 이거 참말로 고맙십니더.” 

“아무리 그렇더라도 지는 이거 못받십니더.” 

“아입니더. 그마 받아 주이소.” 

받으라느니 안받겠다느니 한참 실랑이를 벌이다가 배옹 마나님은 느닷없이 배꼽을 잡고 소리내어 웃는 것이었다.


“참말로 지는 못받십니더. 그거 동상한테 갖다 주이소. 인자사 말이지 여름마다 그 냉채는 우리끼리 주고 받는 소리만 고래고래 질렀지 모조리 동상이 맹근 겁니더.” 

“머라꼬예?” 

다른 사람 손의 떡이 커 보인다더니 박옹은 벌써 몇년째를 그렇게 두 마나님과 배옹한테 깜쪽같이 속아왔던 것이다. 그날 이후 박옹과 배옹의 시비는 다시 팽팽하게 계속되었는데

“능구랭이 같은 자슥! 난 또 그런 줄도 모르고 여름철만 되믄 죽을 때까정 늬놈한테 쪽도 못쓸 뻔 안했나!” 

“헤헤, 빙신 같은 자슥! 저거 닭 잡아 묵고 좋아하는 꼬라지를 보믄 늬놈도 평생 어른 되기는 글렀는기라.” 

냉채야 어찌 되었건 두 친구의 시비가 백살이 넘어서도 끝없이 계속되기를, 천지신명이시여! 이 천진무구(天眞無垢)한 두 노인네의 무병장수(無病長壽)를 부디 굽어 살펴 주옵소서.


<2025. 4월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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