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조만담[제13화] 학급일지(7)

2025-04-09
조회수 58

최초의 졸업반 지(誌) “유수”

세월은 유수같이 흘러 어느 새 조락의 계절, 그 계절을 닮아 누렇게 변해 가는 황달빛 얼굴들은 갈수록 예벼(=여위어)갔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어중간한 계절에서 우리는 남은 날수를 헤아린다. 64년 11월 모일, 시청각교실에서 영화 “북경의 55일”을 감상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남은 65일, 운명의 날은 시시각각 다가온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초조감과 무언가 하나씩 잃어간다는 상실감이 가슴을 짓누른다.

이런 감정의 굴곡 속에서 문득 나는 달아나는 오늘을 붙잡아 훗날 기억에 남길 길이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학급의 반지(班誌)를 만들어 보자는 생각으로 발전하였고 제일 먼저 가까운 정영일(변호사)에게 의논하여 동의를 얻고 그것이 바로 김장섭 반장과 정순길 부반장에게 이어져 학급 회의에 올라 전폭적인 지지를 얻어 소위 “반지 제작팀”이 발족 되었다. 재정적 뒷받침이 있을 수 없어 인쇄는 생각도 못하고 십시일반하여 모두 몸으로 때우기로 하였다. 일일이 돌아다니며 원고를 받아 급우들이 나누어 필경(筆耕)으로 가리방을 긁고, 학교 등사기를 빌려 시험지에 잉크를 밀어 발행키로 한 것이다.


해제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

3학년 5반이 학내에서 여러 가지 면에서 주목을 많이 받았지만, 졸업 임시의 급우들이 혼연일체가 되어 이 <유수>라는 문집을 자발적으로 만들어냄으로써 특히 주목을 받았던 것이 사실이다. 37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 책자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으나, 이것을 구해 읽어보면 단순히 졸업 앨범을 보는 것보다 몇 배나 더 당시를 회고할 수 있고, 거기 적힌 희미한 글자 하나 하나에는 추억들이 묻혀 있어 아련한 희비가 교차한다.

실제로 내가 이 글을 쓰기 위하여 집구석에 뒹구는 이삿짐 뭉치를 뒤지고 뒤져 이 <유수>지를 찾아냈을 때의 감격이란 말할 수 없다. 꺼내 놓고 읽다가 얼마나 웃고 가슴이 뭉클하였는지 모른다. 지금도 길을 가다가 그 어떤 장면이 떠오르면 체면 불구하고 혼자서 쿡쿡 웃음보가 터진다. 행위 당시에는 아프고 민망했던 일들도 세월의 강을 지나 기억의 창을 통해 보면 얼마나 그립고 아쉬운 것인가.

정확히 발족한 날은 64년 11월 19일이었다. 이날부터 역할을 분담하여 제작에 들어갔다. 처음에는 대학 입시를 코앞에 두고 이것들이 불장난을 하는 게 아닌가 하고 담임을 비롯하여 주위에서 경계를 하였으나 우리들의 확고부동한 모습을 보고 나중에는 격려하는 자세로 변하였다. 이것은 말이 쉬워 “반지”(class review)이지 그 제작 과정의 어려움은 전혀 고려치 않고 무모하게 의욕 하나만으로 시작한 것인데 반원 모두 일사불란한 협조와 참여로 조금의 차질도 없이 진행되었던 것이다. 우리는 대학 입시 준비에 바쁜 마음을 달래며 반지 발행 사업을 계속하였다. 실제로 이런 짓(?)을 하고도 사후에 S대학에 5반이 숫적으로 가장 많이 합격하였으니 우리가 순전히 엉터리는 아니었음이 증명된다 하겠다.

우리는 합의가 되자마자 바로 일의 추진을 위하여 역할 분담을 하였다. 기획 및 편집: 정영일, 박구하, 필경: 정순길, 황선우, 서성조, 박재관, 여영수, 김학기, 삽화: 김영석, 조창열, 회계: 김장섭, 손태완, 섭외: 이의규, 박진환, 등사: 이병홍, 김규환, 추희명, 제본: 이정태, 양흥준, 이상욱 등등.

경비 찬조자는 손태완이 500원으로 가장 많았고, 김장섭, 박강호가 각각 300원, 박진환, 김홍권, 추희명, 임한규, 노재철, 김규환 등이 200원, 나머지는 모두들 100원씩 형편대로 출연하여 총 제작비 거금 5,000원을 들여 완성한 것이다. 사용 경비 중 특이한 것은 담배 값(3갑) 100원, 풀빵 값 200원, 저녁 값(9명) 250원, 막걸리 값 200원 등이었다.

유수지를 제작하면서 여러 가지 에피소드가 많았으나 다 기억이 나지 않고 다만 유수지 제작팀 위안 공연을 가진 것이 기억난다. 이날은 수요 분단의 벌 청소하는 날인데, “해제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떼를 쓰며 벌 청소를 일방적으로 무기 연기하고 위안 공연을 가진 것이다. 사회는 이상욱이 보고 1, 2학년생 몇몇이 자진(?) 출연하였고, 반내에서 다수가 출연하였다. 그 면면을 보면, 코빨갱이 S, 꺾다리 K, 넙띠기 위안부 P, 바닷물에 20년쯤 담궈 놔야 간이 맞을 싱기비 L, 여성나체 숭배자 K, 곧잘 커크 더글러스를 사칭하는 Y, 이미자 선전부장 P, 국제 ‘ 와리바시’ 경연대회에서 당당 우승을 차지하고도 남을 J... 등등이다. 이날 노래 외에 자작시를 낭송한 박강호 군의 감동적인 무제목의 시를 인용한다.

 

대학을 바라보니 실력이 낙제

한 해를 더 하자니 너무나 억울하여

3류를 바라보니 눈물이 핑 도네

 

제작 기간 중 적성 검사(여선생 출동!), 모의고사, 음악회로 행사가 겹치면서 힘이 들었다. 무엇보다 큰 부담은 학년을 마감하는 졸업 시험이었다. 12월 8일~12월 10일 3일간에 걸쳐 실시된 마지막 졸업 시험이 끝나던 날, 우리는 눈물, 콧물 다 흘리고 코피, 커피 다 마셨다. 그토록 고대했던 인권 회복을 구가했다. 잃었던 양심을, 세월을, 자유를 도로 찾았다며 여기저기서 함성이 터졌다. 아직 더 큰 일이 남았는데도 애써 모른 척하고 우리는 남은 정열을 <유수> 제작에 불태웠다. 드디어, 12월 15일 책이 나왔고, 기어이 기념식을 가졌다. 기념식은 아침 첫째 시간인 국어 시간으로 정했다. 영문도 모르고 들어온 최을림 선생님에게 양해를 구했더니 씩 웃으며 응낙해 주셨다. 당일 식순에 따르면 1. 개식사(정영일), 2. 경과보고(박구하), 3. 발간사(김장섭), 4. 담임 축사(유수현), 5. 축사(최을림, 이병균) 6. 폐회(정순길), 7. 테이프 커팅 및 다과회 등으로 꼭 1시간이 걸렸다. 이것은 내가 “유수”지 한 구석에다 펜으로 기록해 놓은 그대로인데 정규 수업 시간에 이런 호화판(?) 출판 기념식을 가졌다는 것이 거짓말 같은 참말이었다.

 

●삽화 - 박세형(24회)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만화학과 교수


‘이 강산 낙화유수…’ 유행가서 힌트

책의 내용을 보면, 핑크빛 표지에 “유수”라는 제호와 「부산고등학교 제14회 3학년 5반」이라고 되어 있고, 내지에 “졸업문집”이라는 표지와 유치환의 교가, 윤동주의 서시, 유수현 담임의 권두사, 반장과 부반장의 발간사, 바이런의 시「별사」, 본문으로 재적 68명중 67명의 앙케이트 답문, 살매 김태홍 외 15인 선생님들의 답문, 반원들의 수필, 졸업일지, 선생님들의 상투 어록, 나도 한마디, 종합 낙서장, 편집 후기 등이 질서정연하게 기술되어 있다. 책이 막 찍혀 나올 때 그 쌈박한 잉크 냄새를 맡으며 좋아하던 급우들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편집 후기에는 “내가 이 줄판만은 절대로 안 빌려줄라 캤는데…” 하며 아끼던 줄판을 빌려준 도서관의 이규범 선생, 밤늦게 필경에 매달려 있는 학생들을 보고 “가라, 가. 오늘 밤 학교 책임자는 나란 말이야, 나!”하고 똥고집을 피우던 박용성 선생님, “이 도깨비 같은 놈들, 너-들 3학년 5반은 뭔가 하면, 이거 하나만은 쪼오끔 다른 면이 있다 하겠대이.” 하고 짐짓 눈쌀 찌푸리던 살매 선생님, “담임이 정치과 출신이라 그 밑에 제자들도 정치적으로 이렇게 똘똘 뭉쳐서... 참 존 경험이라요.”라고 헤헤거리던 이주호 선생님, 등사실에서 몰래 학교 장비를 도용하여 등사를 하고 있을 때 등사실장 이병균(서무직원) 씨에게 들켜 혼이 나고 우리의 딱한(?) 사정을 한참 전해들은 그가 우리를 적극 지원해 주어 등사를 무사히 마친 것은 지금도 감사하고 싶다.

<유수>지가 나오자 학내에서는 물론이고 인근 경남여고에도 알려졌고, 우리 밑의 기수들도 비슷한 책자를 내겠다고 했는데 그 후 실제로 나왔는지는 알지 못한다. 이 유수지를 만든 탓인 지 우리 3학년 5반은 남달리 친밀감을 느꼈고, 졸업 후 반창회도 여러 번 가졌으며, 그 유대감을 아직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책 이름을 짓는데도 고심을 많이 하였다. 옛날 남인수가 불렀던 유행가 ‘이 강산 낙화유수 흐르는 물에’ 에서 힌트를 얻어 마침 우리 반 담임선생님 함자가 “유수현”인 점에 착안 “유수”로 하자고 정하였다. 다만 한자로 굳이 쓰지 말고 한글로 “유수” 라고 하여 다양한 뜻을 함유하도록 배려하였던 것이 기억난다. 지금 이 글도 그때 발행한 <유수>지를 참조하여 쓰고 있으므로 이 책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실감한다. 이 책자는 약 100부를 만들어 급우들에게 각1부씩 나누어주고 선생님들과 학교 도서관에 기증을 하였다. 책머리에 나오는 「벗이여!」라는 내가 쓴 서시 일부를 옮긴다.

 

“벗이여! / 이젠 어쩔 수 없는 순간 / 초록빛 가슴을 안고 / 바쁜 걸음 어디들 가려느냐 / 너와 나와 너! / 여기 흐르는 거리에 또 하나 연륜이 더하면 / 우리 땀내 나는 꿈은 좀먹고 가슴엔 하많은 가을 오리니 / 이제는 마지막 악수를 나눠야겠다 / 우리 서로 하늘빛 다른 이역에서 오늘이 그리울 제 / 우리 젊은 꿈과 희망이 어린 밀어들 모음 / “유수”를 기억하고 힘을 내자 / 힘찬 생활의 매듭을!”         <5월 호에 계속~>


박구하(18회)

0 0
TOP